“눈에 보이는 것을 잘 보려면
보이지 않는 걸 볼 줄 알아야”
저자 경험 바탕 인문학적 성찰

 

본 야스쿠니 신사에 진열되어 있는 정로환. 한 번쯤 들어본 약일 터이다. 지금도 일본 여행을 하면 사 오는 물품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약이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로환의 역사는 1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4~5년에 벌어졌던 러일전쟁 때, 물이 안 맞아 일본 병사들은 전쟁하던 중에도 복통을 참아야 했다. 이때 강력한 살균력을 지닌 크레오소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정로환이 등장한다. 당시 정로환은 병사들의 배를 치료해주는 신(神)의 약이었다. 이 약으로 인해 설사나 복통을 호소하는 병사는 격감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약을 한자로 正露丸으로 표기하지만, 당시엔 러시아(露)를 정복(征)하는 알약(丸)이라는 의미의 征露丸이었다. 왜 이 약이 야스쿠니 신사에 진열되어 있는지,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겠다.
 
어쩌면 이게 일본의 민얼굴인지 모른다. 우리가 잘 몰랐던 생생한 일본의 민낯을 제대로 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시인·문학평론가)의 <일본적 마음>을 통해서다. 
 
단순히 인상비평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3년간 일본에 체류하며 학자로서, 타자로서 보고 듣고 체험하며 쌓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책은 '체념' '집단주의' '부끄러움과 수치' '죽음'의 문화를 통해 일본 사회를 읽어낸다. 일본인의 미학적 관념부터 문화, 문학, 작가, 역사 인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적 관심과 인문적 성찰이 때론 부드럽게, 때론 날카롭게 펼쳐진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이 자기 문화 속에 들어왔을 때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인의 생활방식 중 하나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난 게 에도 시대의 화가 호쿠사이가 그린 '후카쿠 36경'이다. 그림을 보면, 후지산도 삼킬 듯이 덤벼드는 파도에 마구 흔들리는 세 척의 생선잡이 배가 있다. 배에 탄 사공들은 피할 수 없는 거센 파도 앞에 납작 엎드려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대하는 자세다. 이런 풍경은 자연과 재해에 맞대응하는 일본인의 집단심리를 그대로 담아냈다. 마을 축제인 마쓰리를 통해서도 똑같은 일본의 집단정신을 읽어 낸다.

저자는 또 일본인이 사죄를 모르는 배경에 수치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태평양전쟁 때 군인 위안부 등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죄'라고 생각할 때, 일본의 정치인들 혹은 일본이라는 '국가주의'를 강하게 강조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런 일들을 '수치'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런 불명예를 스스로 인정할 수 없으니 숨기거나 왜곡하고 싶어 한다. 
 
일본 문화물의 클라이맥스는 종종 '아름다운 죽음'으로 미화되곤 한다.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 큰 것을 위해서는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이들이 만든 문화물 곳곳에 스며 있다. 이 죽음의 문화는 야스쿠니 신사에 이르러 정점을 차지한다. 야스쿠니란 말은 '나라도 진정할 힘'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과 세계를 눌러 조용하게 만들어버리는 상징물인 것이다. 이 신사엔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들부터 2차대전 때 죽은 250여만 명의 혼백이 신으로 모셔져 있다. 죽어서 신이 된다는 명예 앞에서 전쟁에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 국가중심주의의 맨 앞에 야스쿠니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 되면 섬찟하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모두 섬찟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가난하고 한적한 데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 특유의 와비사비 미학, 일본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까마귀가 그려진 이유 등을 통해 그들의 또 다른 삶의 이면을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일본의 겉은 녹색의 푸른 초장이지만, 속은 끓는 마그마를 숨기고 있는 나라인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표현이 적확하다는 걸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모습을 잘 보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책은 그걸 보여준다. 

부산일보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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