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에 가족들의 눈치를 보다가 '밀린 글 빚이 있어 잠시 연구실에 나갔다가 오겠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당연히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오늘 같은 날 관장이 출근하면 직원들이 불편하다'는 늘 받아오던 핀잔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막막하여졌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이 박물관장이 쓰는 '특별기고'이니 당연히 문화재나 가야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뜬금없는 말씀'이라는 제목도 정해 놓고 그 내용도 조금은 정리하여 둔 참이었습니다. 그 대강은 이랬습니다.
 
지난 6월 초 대통령께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당신의 표현대로 '뜬금없이' '가야사의 연구와 복원'을 주문하셨습니다. 학계는 물론 가야와 연관이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미진한 가야사 연구에 대해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아주 최근의 학설까지 언급하셨으니 학계에서는 반갑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설화와 허구에 가까운 내용까지 끌어들여 예산 받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도 접하였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가야사 연구'가 '가야사 복원'이라는 탈을 쓰고 '가야사 만들기'로 둔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게다가 한 발 더 나아가 '100대 국정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풀고 고쳐야 할 굵직한 과제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100대 국정과제'까지 된 것은 너무 나아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가야 국립박물관장'으로서는 미진한 가야사 연구를 대통령께서 직접 언급하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 대통령 임기 중에 가야사의 연구나 복원이 완성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거시적 관점에서 정책을 입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야와 연관이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마다의 계획을 검토한 뒤 '만들기'에 가까운 '복원' 사업에 예산을 나누어 주는 일은 지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지방자치단체마다에 연구 인력을 충원하여 주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훼손되고 방치되고 있는 '가야'의 유적을 연관 지방자치단체의 전담된 연구 인력이 파악하고 관리하고 더 나아가 연구·보존하게 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 기반만 확충하여도 머지않아 '가야사 연구'는 틀을 잡게 될 것입니다. 무덤에 잔디를 입히고 흙을 더 쌓아 더 크게 보이게 한다고 가야사가 복원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 겨우 기와나 벽돌 조각 몇 개밖에 알려진 것이 없는 가야의 역사와 문화인데, 가야의 왕궁을 어떻게 복원할까요? 왕궁을 주춧돌도 없이 초가로 이을까요? 그야말로 '가야사 만들기'입니다. 천천히 가야의 무덤을 발굴하고, 왕궁이 있는 궁성지를 찾고 연구할 일입니다.
 
일전 문화재청에서 중기 계획을 발표한 것에 따르면 일회성이 짙은 복원 사업보다는 '가야총서'를 우선 발간하고, 그야말로 연구를 위한 발굴이나 조사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겠다고 합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뜬금없는 말씀'에 대해 쓰려던 글이 쫓기듯이 쓴 '무거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꿋꿋하게 근무하고 있는 우리 직원들에게 크리스마스와 새해 인사를 메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어서 아쉽습니다만, 단비입니다. 김해뉴스 독자와 시민 모두 즐거운 성탄과 건강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유일한 국립가야박물관'으로서 가야사 연구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우리 도시가 가야사 연구에 앞장설 수 있도록 큰 사랑을 주시기 바랍니다.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