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사~려~. 메밀~묵~' 찬바람 부는 겨울철 늦은 밤이면 동네 골목에서 흔히 들었던 소리다. 예전엔 단독주택들끼리 처마를 맞대고 살던 때라 방안에서도 메밀묵이 왔다는 그 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저녁밥은 벌써 먹었으나 때맞춰 들리는 메밀묵의 외침은 다시금 허기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간장이 뿌려진 차가운 메밀묵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메밀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전 지역에 있었다. 고려 말의 이색은 '대나무 꼬챙이에 메밀떡을 꿰어 간장에 발라 불에 굽는다'고 했다. 추사 김정희도 '메밀꽃은 희끗희끗하고 은조(좁쌀)는 희다. 온산을 뒤덮은 것이 모두 만두의 재료구나'라고 했다. 시인 박목월은 메밀묵을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으로 표현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이효석은 메밀밭을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묘사한다. 고금의 문인들 모두가 메밀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하다.
 
뿐만 아니다. 지금은 설날에 쌀로 만든 떡국을 먹고 있지만 17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설날에 차례를 지난 후 떡국이 아닌 메밀만두를 주로 먹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메밀이 단순한 별미 정도의 곡물은 아닌 듯하다.
 
예부터 메밀이 대중적이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메밀은 그 재배 범위가 넓고 기후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 건조한 땅에서도 싹이 잘 트고 생육기간이 짧으며 불량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특히 강한 작물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의하면 정조는 '메밀은 맨 나중에 심고 맨 먼저 익는다.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시간이 짧아서 파종 후 50일이면 능히 열매를 맺으니 굶주림을 구제하는 방책이 된다'고 했다. 가뭄이 들어서 들판 전체가 시들어갈 때 중앙정부에서는 급히 '메밀 대파'를 지시했다. 말라죽은 곡식 대신에 메밀을 심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메밀은 식량이 없을 때 급히 생산해 먹을 수 있던 구황작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메밀은 항상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백성을 먹이는 주요 식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주로 먹는 곡물의 가격대를 살펴보면 20㎏ 기준으로 쌀이 3만~5만 원대, 밀은 2만~5만 원 정도라면 메밀은 수입산 조차 최소 10만 원 이상이니 구황작물이라 불리기에는 귀한 몸이시다. 현재 메밀의 용도는 주식이 아닌 분식 형태의 별미나 건강식품으로서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메밀을 가루 혹은 차의 형태로 먹었더니 변비에 정말 좋았다는 분들이 있다. 피부가 맑아졌다는 분도 있다. 간혹 다이어트 목적으로 이용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다.
 
메밀을 동의보감에서는 교맥(蕎麥)이라 하는데 '성질이 평(平)하면서 차고(寒)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장위(腸胃)를 든든하게 하고 기력을 돕는다. 또한 오장에 있는 더러운 것을 몰아내고 정신을 맑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런 체험과 옛 자료만 본다면 메밀을 적극적으로 먹어 볼만한 것 같다.
 
그러나 불편한 경험을 가진 분들도 많다. 메밀을 먹었더니 아랫배가 더욱 차가워지고 설사가 난다고 한다. 힘이 빠지고 어지러워 계속 먹기 힘들다는 분들도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메밀을 먹고 나면 피부가 가려워지는 것 같다고 호소하는 분들도 있다.
 
동의보감의 기록을 더 살펴보자. '오랫동안 먹으면 풍(風)이 동(動)하여 머리가 어지럽다. 돼지고기나 양고기와 같이 먹으면 풍라(風癩·문둥병)가 생긴다. 여러 가지 헌데(諸瘡)가 생기게 하므로 끓여서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메밀의 부작용도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메밀은 찬 성질로서 특히 대장의 열을 내린다. 따라서 메밀은 체질적으로 장이 짧고 약해서 평소 대변이 무르고 잦은 태음인보다 장이 길고 평소 변비 경향이 있는 태양인에게 아주 좋은 곡식이라 할 수 있다.

김해뉴스 /조병제 한의학·식품영양학 박사 부산 체담한방병원장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