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 주목해온 프랑스 철학자
“온통 가벼움이 지배하는 시대
우린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몰라”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1844~1900)는 일찍이 "가벼운 것이 좋다"고 했다. 세상은 바야흐로 '가벼움의 시대'다. 가벼운 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했으며, 심지어 우리의 가치와 이상, 절대적 필요성이 됐을 정도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자. 전자업체가 펼치는 노트북 신제품 경쟁만 해도 그렇다. 요즘 많이 입는 겨울철 패딩도 마찬가지. 의류업계는 셔츠 정도의 가벼운 무게감으로 뛰어난 보온성을 자랑하는 초경량 패딩 경쟁에 돌입한 지 오래다. 비단 이것뿐이랴. 날씬함에 대한 숭배, 빠르고 가벼울수록 인기가 좋은 스마트폰이나 나노 재료들이 우리의 삶을 이미 바꾸고 있다.
 
<텅 빈 것의 시대> <패션의 제국> <사치의 문화> 등 대중문화에 관해 신선하고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책으로 주목받은 프랑스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가 펴낸 <가벼움의 시대>는 '가벼움'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우리 시대를 해석하는 책이다. 가벼움은 예술 분야를 넘어 이제는 패션과 디자인, 장식, 음식, 건축 등 매우 다양한 영역으로 퍼지는데, 저자는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가 어떻게 가벼움의 혁명으로 이끌렸는지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먼저 SNS를 예로 들어보자. SNS는 우리에게 소통의 속도감과 확산성을 선사했다. 하지만, 소통의 즉흥성이나 휘발성에서 오는 가벼움은 우리의 삶과 정서를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할까. SNS에서 보여지는 가벼움의 징후는 네트워크를 벗어난 현실 세계에서도 그대로, 아니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혁명과도 같이 시작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가벼움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 '가벼운 유토피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음식만 해도 그렇다. 가벼움의 시대는 우리의 몸에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가벼움의 시대는 "어디서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몸을 유연하게 만들고, 납덩이처럼 몸을 짓누르는 육체성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은 크고 작은 개인적 비극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정신을 무겁게 만든다. 몸에 가해지는 날씬함의 이상은 그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하고,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몸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삶 자체의 무게는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가벼운 것의 문명이 가벼운 삶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얘기한다.
 
삶을 가볍게 한다는 현대의 계획은 물질적인 생활의 변화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 사람들의 감정, 사회화와 개인화의 형태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를테면 금지와 터부의 중압감을 떨쳐 버리는 것, 우리 좋을 대로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것,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초연하고 더 유연하게 사는 것 등이다.
 
저자는 이처럼 가벼운 것이 혁명을 일으키게 한 가장 큰 사회적 원동력을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찾는다. 성생활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가족과 종교는 제도에서 벗어나고, 풍속과 개인은 멋져지고 싶어 하는 개인주의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가벼움에 대해 찬양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가벼움은 어떤 미덕이나 악덕으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하이퍼모던 시대에 엄청난 중요성을 띠는 하나의 인류학적 요구로서, 사회조직 원리로서, 미학적이며 기술적인 가치로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가벼운 것의 혁명은 계속 진행되지만, 우리 삶의 조화는 발견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 혁명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는 행동의 가벼움에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내적 가벼움에서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위험은 변덕스러운 가벼움이 아니라 가벼움의 '비대함'이다. 즉 가벼움이 삶에 침투해 삶의 다른 본질적 차원(성찰, 창조, 윤리적·정치적 책임)을 억누르는 방식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질 리포베츠키의 <가벼움의 시대>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김해뉴스

부산일보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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