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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몰랐던 가야 명칭의 기원과 가야불교
  • 수정 2018.01.10 09:27
  • 게재 2018.01.10 09:23
  • 호수 355
  • 19면
  • 선진규 가야불교문화원 연구위원(report@gimhaenws.co.kr)
▲ 선진규 가야불교문화원 연구위원

김해 김 씨, 김해 허 씨들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기록인 숭선전지 첫 머리에 '가락국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락국기가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의 중요한 단초가 된다. 가락국기를 일부 가문이나 지역의 전유물이 아닌 민족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 까닭이다. 
 
가락국기에는 김수로왕 2년(서기 43년) 정월에 "짐이 도읍을 정하려 한다"고 말한 후 임시궁궐에서 남쪽인 신탑평(지금의 김해읍)으로 행차하여 사방을 둘러보고 "지형은 여뀌잎처럼 협소하나 주변이 수려하여 16나한이 머물 수 있는 곳이다. 하물며 1이 3을 이루고 3이 7을 이룬다. 칠성주가 안주할 곳이니 도읍지로 가장 적합한 곳이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16라한은 불교의 16아라한 성자를 뜻하며 7성주는 7불을 의미한다. 
 
가락국기에 기록된 김수로 왕의 언행을 보면, 그는 당시 이역만리 인도에 존재했던 불교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갖춘 인물 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한 '16나한', '7성주' 모두 당시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하면서 다불 신앙이 일어난 상황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야는 불교과 인연이 깊은 고대국가였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또다른 요소가 바로 가야의 어원이다. 하지만 높아진 가야에 관심이 어원 연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동국대 세계불교연구소 주관으로 지난해 8월 30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가야사와 가야불교의 재조명' 학술발표회는 그 중요성을 일깨워 준 자리였다.  
 
주제 발표 가운데 동국대 고영섭 교수의 '가야 명칭의 어원과 가야 불교의 시원(始原)'이 있었다.  
 
이 발표에서 고 교수는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가야의 국명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가야의 시조 김수로는 어떤 생각으로 국호를 가야라 했을까? 가야라는 똑같은 발음체계와 문자 표기가 동서고금의 경전에 1127개가 나타날 정도로 광활한 지역에서 전해오고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 교수 설명에 따르면 가야는 성인 부다가 진리를 깨친 곳으로 인도에 현존하는 지명이다. 도를 깨친 부다와 합성어가 되어 '부다가야(Budaaha Gaya)'로 사용되어 왔다. 이 부다가야라는 외연이 가야로 압축됐고, 실크로드와 해상로드를 오갔던 전법사들과 상인들에 의해 아시아 전역에 퍼져나간 것으로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 가야는 아시아인들에게 어떤 상징으로 남았던 것인가?
 
진리의 눈을 뜨게 한 장소인 가야를 아시아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기가 살아가는 곳에 계승하고 싶을 것이다. 나라를 건국하고자 이상에 불탄 김수로는 세계적인 나라를 만드는데 이 가야를 접목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가야'라는 말은 가야사를 연구하는데 '핵'과 같은 단어이며 김수로왕이 나라 이름을 '가야국'으로 정한 시기가 기원 초라고 하는 것은 이미 정사로도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가락국기 기록과 정사 기록이 동일함을 알 수 있게 된다. 
 
가야사 토론회 주제 발표 후 필자가 "불교가 들어온 공식연대는 언제라고 보느냐"고 물으니 고영섭 교수는 "왕정시대는 왕의 말이 법이었다. 왕이 공식적으로 불교와 관련 있는 '가야'를 국호로 결정한 때를 전래 시기로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가야사 연구발표는 불교학계의 대표적인 교수들의 학술적 성과인만큼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학술발표를 함께 했던 교수 한 사람이 '엄정한 역사적 고증 없이 설화적 전래를 불교전래로 앞당기는 방식으로 가야사 만들기는 곤란하다'는 요지의 글을 발표했다. 
 
가야불교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길 바라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간 많은 향토사학자들과 역사교사, 가야사에 관심 있는  지역민들이 불교사 연대를 고쳐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내용이다.
 
2000년간 실존하고 있는 '가야'라는 무형의 문화재를 이토록 연구해 그 기원에 대한 풍부한 결과를 도출했는데 찬사는커녕 '가야사 만들기'로 폄하하는 것 같아 더욱더 아쉬웠다. 
 
김해 김 씨 사회지도자 한분이 '설화라 한다면 전국의 김 씨, 허 씨 전부는 조상없는 ‘자식’이 되는데…'라고 탄식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일이다. 
 
가야사 연구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야사 연구가 더 풍부하게 진행되기 위해선 역사, 철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참여가 필요하다. 일부 역사학계가 기존 주장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기득권적 사고를 내려놓고 열린 시각으로 '가야'와 '가야사' 접근하길 바라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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