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막연했던 '임신'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됐다. 기다려왔던 새 생명이 찾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곧바로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언젠가 읽어보라'며 후배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출산·육아 안내서'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펼쳤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복직하면 아이는 어디에 맡겨야 할까',  '13개월 된 갓난아이를 두고 복직할 수 있을까', '육아로 퇴사하면 실업급여는 어떻게 신청하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올랐다. 안내서에 '자녀의 육아로 퇴사하는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를 읽어가다 멈췄다. 
 
'임신, 출산, 육아의 경우 해당 기간이 종료되면 원직에 복귀하는 것이 원칙. 그러나 △의사 등 전문가의 소견 △사업주의 휴직 불허 △가족관계 증명서와 양가 부모님의 재직증명서 △어린이집과 이이돌보미를 몇 군데 알아봤으나 구하지 못했다는 자료 등 비자발적인 상황임을 입증한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양가 부모님의 재직증명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꾸로 해석하면 '양가 부모가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맡길 수 없어 일을 그만둔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말이었다.
 
"워킹맘으로 살려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야해.", "그러게 진즉에 신혼집을 시댁이나 친정 가까운 곳에 구하지 그랬니.", "남에게 아이 맡기느니 용돈 50만 원 드리고 부모님에게 맡기는 게 낫지."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 재활치료 할 시간이 없어. 손자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얼른 퇴원하고 자식 집으로 가야해.", "둘째 아이 가진 며느리 도와주러 손자 돌보러 나섰는데 언제까지 도와줘야하는지….", "자식한테 용돈 50만 원 안 받고 이제 쉬고 싶어." 
 
임신 소식에 '엄마' 선배들의 조언(?)이 쏟아졌고, 한 쪽에서는 '황혼육아'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모들의 하소연이 들렸다. 국공립어린이집, 유치원이 부족해 임신 때부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현실. 유치원 입학 전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 모두가 '양육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배 속에 아이가 있는 지금 '내 아이는 내가 키울 것. 양가 부모님 어깨에 짐을 지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 환경 속에 워킹맘으로 산다면, 다짐이 무색하게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양가 부모님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는 것은 자식 키우느라 등골 휜 부모에게 다시 양육의 짐을 맡기라고 등 떠미는 꼴이다. 현재 양육 제도가 부실하더라도, 적어도 실업급여제도가 양육 부담을 늙은 부모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40만 명도 안 되는 36만 여 명이다. 2016년 40만6200명보다 4만 명이나 감소한 수치다.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한다. 
 
내 아이가 자라 부모가 됐을 때 "아기 엄마가 일해야 하니깐 손자 좀 봐줘"라고 말하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나는 내 자식에게 "아이를 꼭 낳아야 해"하고 친절하게 말할 수 있을까.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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