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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한국말 막막한 일자리… 함께 견디면 힘이 나요한울타리 (1)베트남
  • 수정 2018.01.24 10:51
  • 게재 2018.01.17 09:35
  • 호수 356
  • 14면
  • 이정호 선임기자(cham4375@gimhaenews.co.kr)

김해시는 다문화 메카로 자리잡았다. 거리에는 다양한 얼굴과 언어들이 넘친다. 인종과 종교 그리고 신념을 넘어 다민족이 공존하는 흔치않은 도시이다. 서로가 가진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과 차별을 걷어내는 작업이 일상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이웃이 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 지 그 속내를 나라별로 들어본다.

▲ 만난 것 만으로도 즐거운 베트남 친구들. 오른쪽부터 정미숙, 김예리, 후엔 그리고 미숙의 ‘친정엄마’인 류재숙 씨.


 

한국말 늦은 엄마들 아이 교육 걱정
돈벌이에 집안 일로 한글 배우기는 뒷전

외국인이라 월급 반밖에 못준다는 업주
수없이 자리 옮겨도 여전히 식당일

여유되면 대학 다니겠다는 야무진 각오
마음 아플 때 기대는 동포가 최고



후엔이 좀 늦었다. 이미 와 있던 미숙과 예리가 휴대폰으로 몇 차례 통화를 하는데 아마 길을 알려주는 모양이다. 마침내 약속 장소인 카페를 찾은 듯 후엔이 멋쩍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후엔은 내외동에 자주 오질 않아 길이 서툴다고 했다. 길도 서툴지만 후엔은 아직 한국말도 서툴다. 한국에 온 지 6년째이지만 아직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볼 엄두가 안 났을 것이다.
 
"한국 오자마자 직장 구해 돈 벌러 나가야 하니까 글 배우고 말 배울 시간이 어딨어요." 미숙이 안쓰러운 듯 후엔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이 셋은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이다. 한국에 온 지 11년째인 정미숙(39)은 친숙한 한글 이름만큼 한국말이 자유롭다. 결혼하고 낳은 아들을 초등 4학년짜리로 키우는 과정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됐다. 김예리(31)는 12년째, 남편과 딸, 아들 그렇게 네 명이 오순도순 산다. 후엔(29)은 지난해 혼자가 됐다.
 
오늘은 이 세 명이 모처럼 만났다. 여러 친구들을 불렀지만 시간을 맞추다 보니 셋이 됐다. 여기에 업저버가 한 명 동석했다. 류재숙(60) 씨. 미숙의 '친정 엄마'이다. 10여 년 전 김해여성자치회에서 결혼이민자와 여성자치회 회원들을 결연하는 '친정 엄마 맺기' 사업을 했는데, 그때 미숙과 '엄마-딸'로 맺어져 지금까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 소통 이야기가 나오자 미숙의 걱정이 이어진다. "아이들 키울 때 부모 자식 간에 서로 말이 잘 통해야 하는데…,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멋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이 곳에 사는 베트남 엄마들 한국말 잘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아이들은 놀이터든 학교에서든 한국어를 몸으로 배우고 자란다. 그런데 엄마가 말이 서툴러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숙제를 잘 돌봐주지 못한다면…, 그런 걱정이다.
 

▲ 베트남 공동체 연말행사 모습.

후엔도 김해지역에 있는 외국인 지원센터에 나가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돈벌이와 집안 여건이 발목을 잡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한창 크는 아이들을 두고 있는 만큼 교육 문제가 결혼이민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다. 토종 한국인 아이들 틈에 섞여 잘 하는지, 따돌림은 안 당하는 지 늘 신경이 쓰인다. 미숙이 열을 올렸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소풍 날 아침 교사가 전화가 와서 아들 보내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고집 세고 말도 잘 듣지 않아 통제가 안 된다면서." 아들은 가고 싶다며 울고불고, 미숙은 자기가 같이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하소연했지만 끝내 소풍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유치원을 옮겼는데, 어느날 재롱잔치를 하고 교사가 전화가 왔어요. 아이가 너무 귀엽게 잘했다고…. 그 소리 듣고 전화에다 대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 측면에서 예리는 딸(21)이 고맙다. 전처 소생이지만 저보다 한참 어린 초등 5학년짜리 동생을 살갑게 챙겨주니 집안에서 예리의 큰 지원군이다. "그런데 한국은 학원비가 너무 부담이에요. 애들 학원 안 보내면 뒤처지는 것 같고." 예리의 볼멘소리다.
 
학원비도 그렇고, 빠듯한 생활을 꾸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안정적인 일거리는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 식당 일을 하고 있는 예리는 그동안 일자리를 수없이 옮겼다. "어떤 곳에서는 대놓고 외국인이라 월급을 반 밖에 못준대요. 또 사장이 주는 대로 받아라고도 해요." 그 뿐일까, 다른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냉대가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후엔은 새해 들어 네일아트 학원에 등록을 했다. 자격증을 따든, 전문기술을 배우든 뭐든 있어야 안정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한국 사람들 자격증 무척 좋아해요. 기술만 좋으면 될 텐데 꼭 자격증이 있어야 인정해줘요." 그래서 모두들 자격증 시험을 치긴 하는데 그게 또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어로 된 시험은 한국어가 어려워서 점수를 잘 못 따요. 그런데 베트남어로 된 시험이 2년에 한 번 정도 있는데, 이건 한국어 시험보다 더 어려워요. 문제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 아이들 합동 생일잔치를 열고 있는 베트남 가족들.

베트남 출신들에게 베트남어 시험이 한국어 시험보다 더 어렵다? 한국어 시험 문제를 베트남어로 옮기면서 기능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험 치는 사람은 절박한데, 그 절박함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런 불만은 안 나올 텐데. 이래저래 이들에게 자립의 벽은 높다.
 
예리는 베트남에서 관광 관련 전공으로 대학 다니다 사정상 그만두고 결혼이민을 왔다. 원래 꿈은 가수였다. 아이유를 좋아해 그가 부르는 노래는 죄다 외우고,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하나도 빼먹지 않고 봤다.
 
"예리 노래 잘해요. 지난 연말 중부경찰서에서 연 노래자랑 대회에서 3등 했어요." 미숙의 자랑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가수의 꿈을 키울 수는 없는 일. 예리는 돈을 벌어서 대학에 다시 다니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2년 정도 일하고 대학 등록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한데 그럴 여건이 못되네요." 대학을 나와 관광업계에서 일해 보겠다는 예리의 희망은 현실의 크고 작은 장벽에 막혀 여전히 미완성이다.
 
프리랜서로 통역 일을 하는 미숙은 생활이 그나마 안정된 편이다. 결혼이민자는 처음 공항에 내리는 순간 자신의 앞날이 이쪽 길인지 저쪽 길인지 눈에 보인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공항에 내리니 남편이 장미 100송이 꽃다발을 안겨 주더라구요. 연로하신 시부모님도 함께 마중 나와 계시고…" 후엔은 그러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한 경우다. 결혼이민자들에게 흔한 그런 가정 문제로 지난해 이혼을 했다. 후엔은 일자리를 가지고 홀로서기를 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보다도 당장 아들(5)을 못 보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다. "시댁에서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해요. 이혼할 때 한 달에 한 번 만나도록 합의했는데…"
 
"그건 법적으로 대처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 씨가 나섰다. 말도 잘 안 통하고 한국 물정에 아직 어두운 후엔이 안쓰럽다. 류 씨와 미숙이 후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알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동포들끼리 만나니 모처럼 기분이 좋은 하루다. 오랜만에 쏟아놓는 이야기들이 끝이 없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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