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지역의 한 공장에서 근로자가 홀로 작업하고 있다. 최근 일감이 없어 문을 닫거나 직원을 줄이는 지역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조선 호황으로 내실 없는 급성장
 지역 대표기업도 사업 철수 가세
"재편 더 미루면 기업 다 떠날 것"


 
장기적 계획이 부재한 상태에서 1990~2000년대 조선, 자동차 호황에 힘입어 양적 팽창만을 추구해 온 지역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2016년부터 지역의 조선, 자동차, 기계 관련 2~4차 협력업체들이 발주처의 물량 급감과 함께 폐업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신성장 산업으로 업종전환·다각화 등 기업의 자구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지자체,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지역제조업은 폐사상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수명을 다한 김해의 산업구조가 새롭게 재편돼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영세성 못 벗어나는 업체들 
2016년 김해시의 제조업체 조사에 따르면 지역에서 7461개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고용 중인 근로자는 8만 2738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역 제조업 구조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7461개 기업 가운데 74%인 5500여 개 기업이 10인 이하 기업이다. 반면 50인을 초과해 고용하는 기업은 223개로 전체 제조업체의 3%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영세성은 낮은 생산성으로 확인된다. 2014년도 경상남도 기본통계에 따르면 김해의 10인 이상 제조업체 수는 2318개로 창원(1945개)보다 많아 경남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김해 기업들의 총 출하액은 19조 2128억 원으로 창원(57조 4625억 원)을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 급성장한 양산의 제조업체 수는 김해의 30% 수준인 836개에 불과했지만, 총 출하액은 김해의 73%인 13조 9500억 원을 기록해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경남발전연구원 김진권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대규모공단이 일부 조성 중이지만 김해지역은 다양한 중소영세업체들이 모여들면서 난개발로 성장한 지역"이라며 "(경기불황) 바람이 불면 그러한 한계기업들은 바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열악한 산업구조는 김해와 규모가 유사한 인구 50~70만 산업도시 가운데 지역총생산이 전국 하위권에 머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인구 55만(외국인 포함)인 김해의 지역 총생산은 13조 2256억 원이었다. 반면 경기도 화성(63만), 안산(73만)의 2013년 지역 총생산은 각각 34조 2968억 원, 22조 5846억 원이었다. 인구 64만의 충남 천안의 경우 2012년에 지역 총생산이 이미 23조 4314억 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관련 대기업과 1차 협력사들이 포진한 수도권과 충청권의 산업적 특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인구에 비례한 총생산액이 1.5~2.5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은 지역산업의 낙후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폐업 도미노될라
2016년 김해시 제조업체 현황에 따르면 전체 기업 가운데 기계금속, 자동차, 선박 관련 업종이 전제 59.9%를 차지한다. 이들 기업 중 다수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수주물량 급감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폐업이 속출하면서 인근 상권도 타격을 받고 있다.
 
주촌면의 대표적 금속가공 공장 밀집지대인 내삼리의 한 상점 주인은 "경기가 안 좋았던 지난해에 비해서도 문 닫는 공장들이 눈에 뛰게 늘었다. 매출이 지난해 절반도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제조업을 지탱하던 조선, 자동차 관련 중견기업마저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역산업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때 4000억 원 이상 매출을 기록하면서 지역 조선기자재 업체의 선두주자였던 하이에어코리아는 2016년 3034억 원 매출을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조선·플랜트 부분에 밸브를 공급하는 조선 관련 코스닥 상장사 디케이락의 주가도 지난해 10% 이상 빠졌다.
 
여기다 과거 지역제조업을 대표하던 LS네트웍스(구 국제상사), 태광실업 등 기업들도 생산거점을 이전하거나 김해를 떠나면서 지역제조업 위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역 상장사 가운데 1973년 상장해 상장 1호를 기록한 LS네트웍스는 지난해 안동 물류센터를 매각하며 사실상 지역에서 철수한 상황이다. 지역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1조 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는 태광실업은 베트남으로 신발 생산거점을 이전한 후 고용기여도가 급격히 낮아졌지만, 지역에서 이렇다 할 신사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

 
■신성장 산업으로 재편해야
문제는 아직 폐업, 부도 등 관련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한계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업은행 지점의 한 지점장은 "금리 인하와 상환 유예를 신청하는 한계기업이 들고 있다. 과거에는 그런 기업들이 많이 없었다. 올해가 지역제조업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BNK투자증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조선, 자동차 업황이 좋지 않다. 김해 지역에 탄탄한 기업들도 일부 있지만, 주력업종이 조선·자동차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리인상, 최저임금 상승 등의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지역제조업의 변화를 미뤄선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업종 전환, 사업 다각화 요구가 커지자 김해의생명센터,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지원기관이 관련 사업을 확대하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김해시가 3대 전략산업 중 하나로 의생명 산업을 선정해 의생명센터를 통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역의 의생명기업은 72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하는 기업을 선별지원해 산업 고도화와 재편을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남발전연구원 김진권 선임연구원은 "한계기업이라고 무조건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 기술 개발, 해외시장 개척 등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맞춤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제대 유성진 경영학부 교수는 "지역제조업이 위기 상황이다. 더 이상 산업구조 개편을 미뤄선 안 된다. 시기를 놓치면 기업도 사람도 떠날 것이다. 지역도 공동화될 것"이라며 "과거 부산도 신발, 합판 산업에만 고집하다 제조업이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현재 김해 제조업은 부산 사상공단, 창원 등에서 넘어 온 중소기업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더 싼 부지와 인건비를 찾아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해 혁신기업을 유치·육성하고, 기존 기업들에 대해서도 고도화를 위한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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