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은 저승사자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새해 희망을 노래해야 할 신년벽두부터 저승사자라니 난데없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영화가에서는 저승사자 신화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영화 <신과 함께>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개봉 16일 만에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했다지요. 2014년 여름에 개봉해 1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은 <명량> 다음으로 빠른 기록입니다.

영화 <신과 함께>는 선량한 소방관(자홍)이 소방작업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귀인의 대접을 받으며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세 명의 저승사자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은 여름보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겨울에 한국에서 보기 드문 판타지 장르의 영화가 이런 흥행세를 나타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의 인기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저는 흥행요인을 세 가지 요소로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지옥 풍경을 실감나게 구현해 관객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준 컴퓨터그래픽(CG)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제작비 400억 원 중에서 약 40%에 해당하는 150억 원을 컴퓨터그래픽 작업에 사용했을 정도로 공간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화려한 까메오의 출연은 휴먼웨어 측면의 성공요인입니다. '포스트 송강호'급으로 젊은층의 신뢰를 받는 배우 하정우와 휴머니즘 연기의 강자 차태현 등 많은 배우들이 명연기를 펼쳤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까메오는 오히려 주연들보다 화려합니다. 염라대왕역의 이정재를 비롯해 영화 중간에 깜짝 등장하는 유명 까메오를 발견하는 깨알재미가 있습니다.

마지막 흥행요소는 소프트웨어인데, 전문가들의 평은 '판타지'라고 하는 생경한 장르가 주는 거리감을 '가족'과 '용서'라는 보편적 주제로 잘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시대의 아픔과 트렌드를 제대로 읽어낸 영리한 스토리텔링도 한 몫을 했다고 봅니다. 권선징악과 휴머니즘이 감동코드로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으니까요. 직업 소방관의 애환과 군대 의문사 문제 등 사회적 문제를 잘 짚어내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재미있는 사실은 '저승사자'라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케이블TV의 드라마 <도깨비>와 <블랙>을 비롯해 영화 <신과 함께>와 동명의 원작 웹툰, 그리고 웹툰 '쌍갑포차' 등 저승사자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문화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요즘 저승사자가 뜨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도층과 공무원의 부정부패, 갑질논란, 권력과 유착해 벌어진 대형 인재(人災) 사고들은 해마다 되풀이되며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으로 마음 기댈 데 없이 우리의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우리나라의 저승사자는 대체로 염라대왕 밑에서 근무하는 일종의 하급 공무원 이미지가 강합니다. 죽은 영혼을 인도하면서 각종 민원을 들어주는 '저승판 9급 공무원'이라고 할까요. 많은 문화콘텐츠 속에서 저승의 판관과 저승사자는 공정하지만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이승에서 만나고 싶은 권력자와 공무원의 참모습인 겁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매년 전 세계 86개국 127개 무역관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주재원들이 검증한 자료를 바탕으로 트렌드 보고서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비즈니스 트렌드의 대표 키워드가 '휴머니즘'이라고 하네요. 첨단테크놀로지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시대, 역설적이게도 비즈니스 기회는 휴머니즘의 색채를 띤 기술에 있다는 것입니다. 휴머니즘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기대가 됩니다.김해뉴스 배성윤 인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