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방자치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그 범위와 규모는 최소 수준이다. 현재 김해시는 예산과 권한을 쥔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기 힘들다. 게다가 수도권 위주의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 악화는 물론 기업과 인재유출이 심각하게 일어나는 악순환까지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지방분권 개헌이 이뤄진다면 지역의 문제는 지방정부가 스스로 해결해 주민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김해뉴스'는 총 5회에 걸쳐 시대의 화두가 된 지방분권에 대해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 지방자치분권이 이뤄진다면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김해지방정부 스스로 김해지역 현안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진은 김해시청 전경.

 

진정한 지방분권, 김해시민 삶을 바꾼다
(1) 지방분권 어떻게 이루나 : 분권 뒤 김해시민의 일상



자치입법권 강화로 조례 제 기능
지방의회 도움 받아 만족도 상승

중앙 권한 이양으로 자치역량 강화
정부지원 못받아 표류하던 사업도
지자체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진행

자치경찰 도입 땐 민생치안 중점


 
김해시 부원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해인 씨에게 최근 기쁜 일이 생겼다. 김해시의회가 영세 상인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상가 임대료 가이드라인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월세 상한선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건물주가 가게 임대료를 대폭 올려버려 난처했는데 잘된 일이었다. 지방정부의 자치 입법권으로 만든 조례는 단순히 권고에 그치지 않고 강제성이 보장된다. 김 씨는 그동안 중앙정부의 지침과 통제에 익숙해져 주민 대의기관인 지방의회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지역밀착형 조례가 생겨 도움을 받게 되니 김해의 자치역량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장보기에 나선 김 씨는 채소 코너 앞에 섰다.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한파로 식재료 값 상승을 걱정했지만 김해자치정부가 물가안정화 정책으로 비축해둔 동절기 채소를 풀어 가격 걱정 없이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물가 관리기간 동안 로컬 농축수산물, 공공요금 등도 인하해 가계 부담이 확 줄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녁 장사를 준비하던 김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김해 관광지를 알려달라는 타 지역 친구의 부탁이었다. 그는 '가야 역사·문화 복원정비 2단계 사업'으로 조성된 가야왕궁과 고인류박물관을 추천했다.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예산문제로 10여 년간 장기 표류하던 사업이었다. 가야사 복원사업은 2006년부터 계획됐지만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3차례에 걸쳐 사업기간만 연장돼 왔다. 자치정부가 출범한 이후 중앙정부만 바라보던 시절은 끝났다. 지방이 능동적으로 주도하고 중앙의 지원이 뒷받침 돼 가야사 복원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김 씨는 관광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받던 김해에 큰 문화자산이 생긴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TV 뉴스에서는 김해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집단 감염병 사태로 속보를 보도하고 있었다. 김해시 보건국장은 감염병이 발생하자 곧바로 시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초등학교 정보는 물론 감염병 확진검사 장소, 감염자 수용 병원 목록, 수습 대책을 공개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김 씨는 불현듯 2015년에 일어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떠올렸다. 발생 당시 보건당국이 국민들에게 병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만 가중시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지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는 곳은 신속성과 정확성, 전문성을 확보한 지방정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얼큰하게 취한 손님들로 북적이는 밤 11시. 누군가가 김 씨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름 아닌 자치경찰이었다. 김 씨의 식당은 주류를 제공하고 있고 치안 불안감이 비교적 높은 외국인 밀집지역에 위치해있어 평소 불안감을 느껴왔다. 그는 민생치안서비스 중심의 자치경찰제가 도입되자마자 순찰·방범서비스를 신청한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별 탈 없이 장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고단한 하루였지만 김 씨의 퇴근길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는 2018년 6월에 진행된 국민투표로 지방분권이 실현되자 점점 김해에 대한 애향심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 중심의 정책으로 인해 매순간 자신의 삶의 질이 향상됨을 몸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


 

▲ 지난 11일 김해 회현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시정설명회에서 허성곤 김해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방분권 개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분권화 되면 사회현안 신속 대응… 여·야 개헌 합의 도출해야


국가운영체계 근본적 개선 요구
지방서 1천만 명 서명운동 확산



"지방 정부의 역량은 충분하며 자치분권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6·13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둔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에 대한 개헌 의지를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자치권과 분권을 확대해 나간다면 지방정부는 주민들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고 단언했다. 만약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 개헌 준비를 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렇듯 정부가 지방분권에 대한 확고한 개헌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다가오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23년간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막을 열었다. 당시 시장과 도지사 임명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었고 지방의회 의원은 주민들이 뽑는 수준이었다. 1960년에는 모든 자치단체장이 직선제로 선출됐지만 이듬해 5월 군사쿠데타로 인해 지방의회가 해산되면서 지방자치는 후퇴의 길을 걸었다. 1987년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로 개헌안이 통과되며 1991년 기초의원 선거와 광역의원 선거가 시행됐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뤄지며 지방자치시대가 개막했다.

지방자치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그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칠 정도로 미흡하다. 헌법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치사무와 자주재정권 등 지방자치의 핵심은 쏙 빠진 형식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중앙집권적 국정운영방식은 사회현안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기획하면 지방은 단순히 집행에 그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도권에 전체인구의 49.5%가 밀집되며 인구 과밀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일자리와 문화시설 등 주민 정주여건이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소멸 위기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앙의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지방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점검·단속, 과태료 부과 등 단순한 집행사무가 이양돼 지방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부족하다. 또한 일부 자치단체의 전문성 부족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 만족도까지 저조한 상황이다.


■전국 지방분권 열기 '활활'
정부는 분권화가 된다면 사회현안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학계와 시민단체도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운영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는 지방분권 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지방분권국가 선언 △주민자치권 신설 △자치 입법·행정·조직·재정권 보장 △지역 대표형 상원 국회 설치 등을 꼽았다.

지방에서는 '개헌 10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개헌을 향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경남도청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로드맵' 발표를 기점으로 자치분권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자치분권 개헌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오는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개헌 시기를 놓고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와 야당은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도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야당은 선거와는 별개로 국민투표는 따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려면 3월 중에는 발의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개헌특위에서 2월 말까지는 개헌안이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사실상 개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오는 30일을 시작으로 한 달간 열릴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 입장차를 극복하고 개헌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



허성곤 시장, 개헌 촉구 적극적 홍보


토론회 땐 전국 대표로 발표
시, 전문가 특채 등 역량 강화

 

▲ 분권개헌을 홍보하기 위해 김해시청 앞에 설치된 대형 광고탑.

'지방분권' 개헌 촉구 움직임은 김해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개헌을 위해 '발로 뛰는' 허성곤 시장의 적극적인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허 시장은 지난해 9월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지방재정분권 국민 대토론회'에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한 발표자로 나서 지방분권이 이뤄져야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12월에 열린 전국대도시시장협의회에서는 협의회장인 최성 고양시장과 제종길 안산시장과 함께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개헌 촉구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소속된 '자치분권개헌 경남본부'에서 상임대표를 맡아 지자체를 상대로 강의에 나서는 등 지방분권 개헌 홍보에 몰두하고 있다.

허성곤 시장은 "지역주민의 문제는 지역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지방분권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커다란 시대적 흐름이다. 오는 6·13 지방선거 때 지방분권 개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해시도 지방분권 추진을 위해 지난해 12월 시의원과 대학교수, 변호사, 주민자치위원 등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김해시지방분권협의회'를 발족했다. 지난 11~22일 열린 읍·면·동 시정설명회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개헌 촉구 행사를 실시했다. 더불어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구대비 20%인 10만 6000명 서명을 목표로 오는 2월까지 개헌촉구 서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또 자치분권 홍보를 위해 전 읍·면·동에 개헌 홍보 현수막과 X-배너, 전단지 등을 비치했다. 시청 앞에는 지방분권을 홍보하는 문구가 적힌 대형 광고탑을 설치했다.

지방분권 시대를 앞두고 시정 전반에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부 조직도 탄탄하게 정비하고 있다. 도시디자인 전문가와 빅데이터 전문가, 전담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 15명을 특채로 뽑아 자치역량을 키우고 있다.

시 관계자는 "김해의 뿌리인 금관가야는 연맹왕국인 6가야에 포함돼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6가야는 지방분권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김해가 원조 지방분권 도시로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포럼을 진행해 개헌을 논의할 것이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분권 개헌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알려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해뉴스 /배미진 기자 b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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