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저자
다양한 주제로 극장 정치 접근



한국 최초의 영화관이 들어선 것이 1903년께라고 하니, 영화관 역사도 무려 100년이 넘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들. 극장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욕망을 표현하며 살아남았을까. 극장에서 여성, 젠더, 민족주의는 어떻게 다뤄지고 소비됐을까.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궁금증에 그치지 않고 답을 찾고자 했다. 극장의 문화정치를 다양한 주제로 접근해낸 <극장, 정치를 꿈꾸다>가 나왔다.

책은 김옥균 이야기로 시작된다. 개혁 운동의 혁명가와 친일파의 원조로 극단적인 평을 받는 김옥균. 그가 극장에서 소비되는 것을 두고 저자는 '문화텍스트에서 역사 인물의 재현은 기억 담론 투쟁 행위'라고 말한다. 역사 인물에 대한 서술 주체의 각기 다른 기억 욕망, 미디어와 정치·자본의 기억 욕망, 당대 정치권력의 기억 욕망, 대중의 기억 욕망 등이 경합을 벌여 특정한 기억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젠더에 대한 접근도 대단히 흥미롭다. 여성 인물을 여배우가 연기하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되던 1920년대 말 박승희, 김기진, 김명순 등으로 구성된 토월회가 첫 공연으로 여배우를 찾았지만 기용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일화에서부터 이월화, 복혜숙뿐 아니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에서 '천한' 여배우의 길을 택한 윤심덕 등의 굴곡진 삶은 당대 여배우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꼽히는 김명순도 마찬가지. '식민지 조선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온' 그는 여성 극작가의 희곡이 매우 드물던 1920년대 희곡을 2편이나 남겼고 끊임없는 자전적 글쓰기로 남성 엘리트들의 맹비난에 맞섰지만 결국 조선 문단에서 쫓겨나 스러져버리고 말았다. 당대 남성 지식인의 무지와 몰염치를 통렬히 비판하는 책이 반세기가 지난 1966년 비로소 출간됐지만, 1세기 전 여성의 고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남북한에서 모두 영화를 만든 유일한 영화작가' 신상옥에 대한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정희 정권의 검열과 통제로 인해 한국영화산업을 아시아판 할리우드로 만들려던 꿈이 좌절됐고, 북한에선 대외적 외교용 예술로만 이용되면서 그는 남북한 모두에서 진정한 예술창작의 자유를 얻지 못했다. '분단체제에서 예술가란 진정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김해뉴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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