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섭 선임기자

봉황대(鳳凰臺)는 김해시 중심가, 해반천 옆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구릉이다. 회현리 패총과 함께 국가사적 제2호인 '봉황동 유적'으로 지정돼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가락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황세 장군과 출여의 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설화의 본향(本鄕)이기도 하다.
 
봉황대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기록에 의하면 조선 후기 1870년 김해부사로 부임한 정현석이 이 일대가 봉황이 날개를 단 것 같다하여 '봉황대'라 불렀다고 전한다. 지금 같으면 김해시장, 그것도 서울에서 내려온 임명직 시장이 임의로 이름을 바꾼 셈이다. 
 
봉황대라는 이름은 가까운 의령과 경주에도 남아있다. 강원도 춘천과 평창, 충북의 영동, 광주의 무등산, 경북의 김천 등 전국 곳곳에서 봉황대를 찾아볼 수 있다. '가야 왕도' 김해를 대표하는 이름이 아닌 것이다.
 
정현석 부사는 김해를 춘추시대 이후 중국의 오랜 수도였던 남경에 비유해 그 별칭인 금릉으로 부르고, 남경 서남쪽에 있는 언덕 이름 봉황대까지 빌려왔다고 한다. 봉황대라는 이름은 중국의 문물을 흠모하여 섬기고 따르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뿌리깊은 모화사상(慕華思想)에서 비롯됐다. 김해의 정체성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이 같은 이름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국가사적으로 지정하면서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무지하다고 할까, 무모하다고 할까.
 
봉황대는 이전에는 가야를 뜻하는 가라대(伽羅臺), 바다를 바라다볼 수 있다 해서 망해대(望海臺), 출여의 낭자의 설화에서 유래된 여의현(如意峴) 등으로 불리어 왔다. 정상 바위에는 지금도 '伽羅臺'라는 글씨가 선명히 남아있다.
 
봉황대가 자리한 회현동이라는 지명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해지리지에 따르면 여의현, 즉 여의 고개라는 이름이 여우 고개로 잘못 전해지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 한자식 지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여우를 뜻하는 한자를 따서 호현(狐峴)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여우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다시 회현(會峴)으로 바뀐 것으로 기록돼 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일이다. 아직도 일제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문화적 소양이 없는 행정 편의적 비극을 여기에서도 본다.
 
인명이 사람의 뿌리라면 지명은 땅의 뿌리다. 지명은 우리를 둘러싼 지리와 역사적 흔적, 민속적 특성이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향토 역사와 문화의 보물창고다. 
 
지금이라도 봉황대와 회현동에 제대로 된, 원래의 이름을 돌려 주자.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도나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 구역을 변경할 때에는 법률을 바꾸고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지자체에 속한 읍·면·동의 명칭은 조례 개정만으로 변경이 가능하다. 
 
경북 고령군도 2015년 4월 고령읍이라는 이름을 대가야읍으로 바꿔 1,600년 전 대가야국 도읍지로서의 역사성을 브랜드화 하고 나섰다. 부산시는 2015년 2월 강서구 가덕도의 행정동 이름을 천가동에서 섬 이름을 그대로 딴 가덕도동으로 바꿨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등 지명을 지역 이미지와 역사성, 정체성을 반영해 바꾼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침 정부 차원의 가야사 연구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경남도와 김해도 가야문화 재정비 사업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다. 가야 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모화사상과 일제 잔재를 떨어내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김해시와 시의회의 노력과 건강한 시민사회의 동참을 기대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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