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건축가 승효상 씨의 말이다. 한 공간에 오래 살다보면 그 공간의 영향을 받아 삶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은 단순한 집 짓기가 아니라 삶의 시스템, 즉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아파트, 그 획일적인 공간에서 무표정하게 지내면서 집값이라는 가치만 따라잡는 게 지금의 주거문화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좋은 집들과 이를 만든 건축가들의 좋은 생각들을 따라가 본다.



(1) 대성동 타워 하우스(Tower House)
대지면적 752.9㎡,  건축면적 128.9㎡,  연면적 145.7㎡,  철근콘크리트 구조

 

▲ 타워 하우스 전경. 다채로운 색감의 건물과 우뚝 솟은 전망대가 독특한 개성을 뿜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제공 =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아파트로 대표되는 획일적 주거공간 탈피
안방·거실·주방 독립 시키고 전실에서 연결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두 축을 모두 수용
김해 시내 전체 조망, 방마다 다른 정원 감상

동판 산화시켜 얻은 초록색 외벽 타워와 조화
건축물도 살아있어 세월 따라 풍광 따라 변화




김해시 대성동 분성산 자락에 있는 김해향교를 지나면 이색적인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단정한 돌담장 속에 사각 그리고 오각형의 건물이 십자형으로 사방에 펼쳐졌는데, 그 중간에 검은 탑 모양의 구조물이 우뚝 섰다. 건물 전체가 레고 블록을 쌓은 듯 독특한데다 건물 각각의 외벽 색깔도 연한 초록색과 회색, 그리고 짙은 커피색이어서 돌출감이 두드러진다.  
 
타워 하우스(Tower House), 이 특이한 건물은 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이라고 하면 일층이나 이층짜리 박스형 건물이 보통인데 어떻게 이런 전위적인 구조물을 구상했을까. 
 
"공간도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주택의 공간들, 즉 방이나 거실, 주방 등은 제각각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 건물에서는 무시되고 있죠." 이 건물을 설계한 온건축사사무소 정웅식 대표 건축사의 말이다. 

▲ 앞에서 본 타워 하우스 모습.

그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획일적인, 그래서 일차원적인 주거 공간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공간 각각에 개성과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주거에 대한 기억을 되찾는다는 기획이다.
 
이 집을 설계하며 정 건축사는 김해 시내를 조망하며 살고 싶다는 건축주의 희망에다 '독립성'과 '소통'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이 주택에서 '독립성'은 거실과 안방 그리고 주방 등을 십자형으로 펼쳐 분리한데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 공간은 가운데, 즉 탑 아래에 있는 전실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된다. 이 곳이 건물의 중심이면서 또한 소통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전실은 수석과 분재를 좋아하는 건축주의 취미를 살려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여기서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인 전망대(가족실)가 나타난다.
 

▲ 전실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

건물 모양이 십자형이다 보니 정원도 자연스레 나눠졌다. 앞마당과 뒷마당 그리고 사이마당으로 분리되면서 네 개의 건물들이 각각의 정원을 거느리는 모양새가 됐다. 각각의 건물에서 각각 다른 정원과 나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부와 내부,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독립성과 소통은 이렇게 구현되었다. 
 
각 방들이 이렇게 분리되면서 얻어낸 또다른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밝고 따뜻한 집'이다.
 
건축주의 희망대로 김해시가지 전체를 바라보도록 하자면 건물이 서남향이 되어야 했다. 향(向)과 축(軸)은 건축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서남향이면 사계절 햇빛이 집안에 고루 들지 못한다. 이렇게 각 방들을 사방으로 분리해 거실은 동남향, 안방은 서남향 등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각 공간들에 햇빛이 최대한 많이 들도록 했다. 
 
이 집이 들어선 지역은 구시가지와 한창 개발 중인 신시가지가 맞물리는 곳이다. 주택이 십자형을 함으로써 앞마당과 거실, 그리고 전망대 쪽은 구시가지의 축, 그리고 안방과 작은 방은 신시가지 축을 따라가는 재미있는 구도가 되었다. 김해의 다양한 모습이 이 집에 녹아드는 것이다.   
 
전망대는 널찍한 창문을 달아 김해 시가지 전체를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왼쪽으로 수로왕릉과 김해시청 방면, 오른쪽으로는 김해박물관과 연지공원 방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원은 경사진 대지의 특성을 살려 입구부터 건물까지 높낮이를 주었다. 대문을 지나 진입마당에서 거실 앞의 앞마당 그리고 거실과 안방 사이의 전이마당과 사이마당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그리고 다시 낮은 곳으로 오르내리는 변화의 묘미가 있다.
 

▲ 전망대 내부 모습.

이색적인 것은 거실의 일부를 정원 위에 떠 있게 만든 '뜬 공간'. 마치 필로티 건물처럼 정원 위에 거실이 비쭉 튀어나오도록 해 그 밑에 빈 공간을 만들었다. 거실에 있으면서 마치 정원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날 수 있다. 
 
건물의 마감재는 건축주의 취향과 건물의 개성 둘 다 반영했다. 건축주는 금속을 쓰기를 원했는데, 그 결과가 옅은 초록색인 거실과 뒤쪽 주방 건물이다. 동판을 산화 시켜 얻은 색감인데, 이 색을 얻으려고 전문업체들을 수소문했다. 회색에 가까운 안방과 작은 방의 외벽은 적삼목 노출 콘크리트를 썼고, 타워 부분의 짙은 커피색은 울링이라는 나무를 사용했다. 이들 재료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연륜만큼 색깔도 조금씩 변하는 성질을 가졌는데 이는 건축물에 대한 정 건축사의 생각이기도 하다. "건축물도 살아있습니다. 세월 따라 풍광에 따라 그 표정이 변하는 거죠." 
 
새로운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다채롭게 변주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은 이런 독창적인 건물을 생성시켰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건축 작가의 말 
 

▲ 정웅식 온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주거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아파트라는 주거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새로운 주거방식에 대한 접근이 생소하다. 
 
아파트는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보편적 라이프 스타일에 고정시켜 버렸다. 방과 거실의 관계, 방과 방의 관계, 공간과 공간의 관계가 전혀 없이 이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성이 없고 내·외부와의 소통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런 환경은 가족단위의 생활과 삶조차 일차원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는 나아가 이 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도 맞물린다. 
 
타워 하우스를 통하여 새로운 공간과 이를 통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하고 싶었다. 공간의 개별성과 독립성의 관계 구축이 우리가 잃어버린 주거에 대한 기억을 다시 복원하고 삶의 가치를 증대 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보았다.
 
각자의 성격과 개별성을 가진 공간들은 거주자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측정하기 힘든 주거의 가치를 만들어줄 것이다.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파격적인 배치와 제안을 수용해 주신 건축주에게 감사드린다. 이 주택이 그 분들의 삶을 가치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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