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시인

대중문화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상업주의 문화이다. 현대의 소비문화 생산 방식은 영상미디어의 발달로 구조적 의식의 획일화 작업에 개인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매스미디어는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 생산, 수용, 소비가 일어나는 것으로 대기업의 체계적인 관리로 이루어지게 되는 강력한 독점 권력의 주체가 되고 있다.

대중문화는 일상 속에 존재하고 무의식 속에 침투한다. 대중문화의 생존은 경쟁과 대립 속에 수용되고 지배와 피지배로 확연한 구분을 지키면서 생산주체와 소비주체로 양분되는 것이다. 즉,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창출 하는 모방과 복제로 리스크를 줄이면서 자본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다.

TV나 드라마에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이 현상은 오래 전에 상영된 '국제시장'이나 현재 상영되고 있는 '1987'도 감독 성향에 따라 각색되고 윤색되어 다분히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고 이윤을 챙기려는 구조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눈물과 감정 속에 획일적으로 몰고 가는, 은유가 빠져버린 대중문화의 속성인 것이다.

그러면, 대중문화의 통속성이란 무엇인가? 문학 용어 사전에는 문학적 교양이 비교적 낮은 독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기호나 흥미에 중점을 두고 저술한 문학이라 정의하고 있다. 정의는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 하지만 고급문학 예술의 향유 층은 교육의 정도나 수준에 따라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사람들일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통속은 급변하는 최대다수, 최대행복을 위해 소비층을 겨냥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문화 즉, 통속예술이 폭발적으로 증폭하는 배경이 된 것이다.

일하는 기계인간들에게 공허를 깨워주는 것은 고급 예술을 즐기자는 시간과 노력이 절대 부족한 것에, 결국 소비를 위한 비극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욕구해소를 위한 통속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시의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랑만큼 중요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사랑은 현재 지속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의 공통점은 내면화된 사랑과 꿈의 일치, 떠나는 사람의 야속한 감정, 숙명적인 인연과 만남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에게 손쉬운 공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의 인식은 사랑의 고통을 해소 하는 문장이 단문이거나, 잠언적 형태의 문장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진정한 은유가 빠져버린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은유의 결핍을 아무런 사유 없이 받아들인다면 사랑도 쉽게 끝나버릴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유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다른 시들을 애써 외면한다는 것에 있다. 고통을 해소 하는데 난해한 시나 긴 문장은 오히려 고통을 증가 시키는 역할로 작용함은 물론,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 소박한 편견으로 중무장 되는 것이다. 결국 싸구려 위안을 받으면서 인식의 확장과 의식의 갱신 없이 삶을 치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향유할 수는 없다. 사랑에도 결핍은 있는 것처럼. 결핍이라는 물질 때문에 다른 창조적 행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중문화의 리스크도 이 결핍을 메우려는 한 수단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핍을 채우는 것이 풍요라고 자본은 끝없이 획책하고 있다.

SNS에서 흘러 다니는 문자들, 언어들, 우리 모두는 눈 여겨 보아야 한다. 퍼 나르거나 즉흥적으로 생성되는 언어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언어의 창조적 파괴자이다. 이는 사회 통념의 은유를 기각시키면서 생각의 은유도 빠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핍을 채우려는 행위는 창조적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사유의 결핍을 채우려는 진정한 노력과 일시적인 쾌락을 멀리하는 것이 값싼 대중의 논리에서 탈피하는 방식이다.

문학적 언어의 매력은 치유와 재생에 있다. 예술의 결말은 언제나 깊은 사유를 동반한 자기 위안에 있으므로, 개인의 불만족 상태에서 만족으로 가는 이상향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개인이 추구하는 이것이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도 공유되어 폭 넓은 치유의 세상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즉, 상실된 자아, 분노, 불안전한 조절의식에서 승화된 정신적인 위로를 얻을 때 진정한 삶의 결핍을 충전하게 되는 것이다.

은유는 세상에 은은하게 뿌려지는 온화한 달빛이다. 너와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스며드는 달콤한 밀어이다. 은하 밖을 헤엄치던 금붕어가 지독한 어둠을 무너뜨리고 돌아와 무지개 음률을 세상에 풀어 놓은 일월이 다 지나간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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