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척산 모은암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풍경. 한 쌍이 될 짝이 없을 만큼, 또는 자로 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신령하다는 산 이름에 걸맞게 기묘한 바위들이 멀리 낙동강과 어우러져 절로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다.

 
무척산? 무착산?
무척산(無隻山)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한 쌍이 될 짝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의 의미다. 다른 산들과 연결돼 있지 않고 낙동강에서 갑자기 우뚝 솟아난 것 같은 산세에서 그 뜻을 살펴볼 수 있다. 발음은 다르지만 뜻은 같은 무쌍산(無雙山),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른 무척산(無尺山)이라는 표기도 발견된다. '無尺'은 '자로 잴 수 없을 정도로 신령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입구의 도로표지판에는 중국 간자체로 '无只山(우지산)'으로 표기돼 있어 혼선을 부추긴다.
또 다른 이름은 무착산(無着山)이다. 불교적 의미가 짙은 이름으로 신라 말의 무착대사가 백운암에 머문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무착(無着)'은 집착을 없애 편안함에 이른다는 불교적인 개념이다. 1765년 편찬된 '여지도서'에 무착산이라는 이름이 보이며, 현재 모은암 옆에 자리한 중창기 비석(1984년)에도 '무착산 모은암'으로 적혀 있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1481년)에는 식산(食山)이라는 표기도 보인다. 식산이란 이름은 산의 형세가 밥상을 받는 모양이어서 부르게 됐다는 설, 북풍을 막아주고 낙동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김해 고을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설이 있다.
 

▲ 무척산 정상 부근의 천지.

 

낙동강 옆 홀로 솟은 김해의 진산
양산, 부산 한 눈에… 탁 트인 조망
거등왕의 효심 담긴 모은암 설화

백두산 닮은 꼴 산정호수와 폭포
수로왕릉과 천지 연결 전설 ‘신비’
옛 절터엔 기도원… 복원사업 필요




무척산은 김해에서 가장 높은 산(702.5m)으로 가락국의 전설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김해의 진산(鎭山)이자 이천년 전 가야의 설화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산이 품고 있는 서쪽의 모은암, 정상 아래의 산정호수 천지, 동쪽 사면의 백운암 등 곳곳에 옛 가야의 설화가 흘러 넘치며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무척산 가는 길은 생철리에서 시작된다. 생철이라는 지명이 옛날 철이 많이 생산되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하니 무척산이야말로 '쇠바다' 김해의 원류인 셈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과 북쪽으로 낙동강이 크게 굽이쳐 흐르고, 양산과 부산의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한다.
 

▲ 모은암과 미륵바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건립한 '모은암'
무척산 주차장에서 30분 가량 오르면 산 중턱의 커다란 암벽 아래에 모은암이 자리잡고 있다. 어머니의 은혜라는 이름의 암자로 곳곳에 허 왕후와 관련된 이야기와 흔적이 남아 있다.
 
모은암은 수로왕의 아들이자 가락국의 2대 왕인 거등왕이 그의 어머니 허황옥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절이라 한다. 허 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설도 있다. 모은암 앞에 서 있는 중창기에는 "거등왕이 장유국사의 뜻을 받아 진영 자암산에 부은암을, 무착산에 모은암을 이룩하였다"고 거등왕 창건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암자 뒤편으로는 남근 모양의 미륵바위가 수직으로 솟아 있으며, 주변에 장군바위, 연꽃바위, 큰선바위 등 각기 다른 생김새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암자를 둘러싼 형세를 취하고 있다.
 
모은암 뒤쪽의 바위 굴 안에는 돌로 만든 18 나한이 안치돼 있다. 그 중 제일 아랫줄의 나한 사이에 세워져 있는 돌이 수로왕비릉 앞에 안치된 파사석탑과 같은 재질의 파사석이라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가야사 복원 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 강추위에 얼어붙은 천지폭포.

■산정에 자리한 호수, 천지
모은암에서 통천문과 큰선바위를 지나 가파른 비탈을 오르다 보면 무척산 정상 가까운 곳에 천지(天池)가 있다. 계곡을 막은 저수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산정 호수다. 백두산에 장백폭포가 있듯이 무척산 천지에도 폭포가 있다. 규모만 작을 뿐 그야말로 천지와 닮은 꼴이다.
 
설화에 따르면 천지는 수로왕이 세상을 떠난 뒤 왕릉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것이다.
 
"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이 붕어한 후 국사가 천제를 올리고 열흘 만에 능 자리를 찾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명당으로 꼽은 왕의 무덤에서 큰 물길이 솟구쳐 별별 수단도 모두 다 허사였다. 이때 허 왕후와 함께 아유타국에서 온 신보가 '고을 가운데 가장 높은 산에 못을 파면 능 자리에 물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니 군사들이 무척산 꼭대기에 못을 팠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의 말대로 물길이 끊기고 장례는 무사히 치러졌다. 대신 능 자리에 나오던 그 물줄기는 무척산 정상에 파 놓은 못에 가득했다."(김해지리지)
 
천지는 둘레가 대략 300m 정도이고 저수량은 7,300여t에 이른다. 고도표에 따르면 천지가 있는 곳은 해발 580m 지점이며, 그 깊이는 180m 정도에 달한다. 전설과 달리 인공 호수는 아닌 것이다.
 

■산성, 폐사지 등 복원해야
천지 옆에는 1940년에 몇몇 목사들이 일제에 항거해 구국기도의 장소로 삼았다는 무척산 기도원이 있다. 주목할 부분은 기도원 자리가 옛날 통천사의 폐사지라는 점이다. 김해지리지에 따르면 그 주변에 무척사라는 사찰도 있었다. 2004년 지표조사 결과 석탑, 기와 파편 등이 발견된 것도 이 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척산 등산로 주변에는 '성벽'이라는 푯말이 있지만 성터 흔적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무척산이 가락국 시대 신라와의 최접경 지역이고, 식수원인 천지까지 있는 것을 볼 때 정상 부위에 지형을 활용한 큰 산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척산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독립된 산봉우리 정상 주위에 마현산성(馬峴山城)이 남아있는 것도 이같은 추론에 힘을 보탠다.
 
무척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 가까운 곳에 기도원이 있고, 농사와 함께 가축까지 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기도원이 있는 곳은 당초 국유지였으나 1979년에 기도원 측에 불하돼 건물과 대지에 대한 등기까지 마친 것으로 돼 있다. 이후 두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는 고신대 훈련원으로 쓰이고 있다.
 
마침 새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가야사 연구 복원 사업'이 추진 중이다. 경남도와 김해시가 이제부터라도 기도원의 재매입을 통한 폐사지 복원, 천지에 대한 발굴 조사, 산성터 조사 및 복원 사업 등에 발 벗고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김해뉴스 /정상섭 선임기자 v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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