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가끔 '사는 게 뭐 별거 있더냐. 욕 안먹고 살면 되는 거지'라는 대중가요 한 구절이 절실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현실적으로 욕 안 먹고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조사로 인해 우리는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한다. 새해 들어 청탁금지법 개정 시행으로 공직자 등이 선물을 수수할 수 있는 상한액이 5만 원에서 농축수산물의 경우 10만 원까지 높아지고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 원으로 낮아졌다.

선물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선물은 과연 어느 정도의 효용 가치를 지닐까. 미국 경제학자 조엘 왈드포겔이 예일대 학생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가 있다. 연구 결과 받은 사람이 평가하는 선물의 가치는 해당 선물 가격의 약 70%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예컨대 누군가로부터 5만 원짜리 선물을 받으면 받은 사람은 약 3만 5000원 정도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현금 대신 선물을 보내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학 그레고리 맨큐 교수가 '신호보내기 효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자동차회사가 신차를 출시하면서 10년 간 10만㎞까지 무상 수리를 보증한다는 광고를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자동차회사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에 대한 결함이 있을 확률이 크게 낮을 것이라는 긍정적 신호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

선물 역시 받는 사람에게 신호보내기 효과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보낸 사람으로부터 소중한 애정의 신호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선물을 정하고 고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고심했을까. 또 사랑과 정성을 담으려고 애쓴 노력은 그 얼마나 될까라는 신호를.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신호보내기 효과가 부모 자식 간에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굳이 신호 보내기 효과를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현금이 선물 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조사비의 경우는 어떨까. 경조사는 한국인들의 독특한 문화로 해외 연구 결과를 찾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경조사비는 철저하게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 원리에 따라 개인 상호 간 보내어진 신호의 세기를 확인하고 점검해 보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지인으로부터 경조사가 발생하면 먼저 자신이 경조사비를 지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짧은 고민에 빠진다. 자신이 받은 경조사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이 지출한 경조사비는 놀랄 정도로 또렷이 기억하는 속성이 있다. 다음으로 경조사비 액수를 얼마로 정할 것인지가 문제시 된다. 그동안 상대방과 자신 간의 경조사비 거래 회수와 금액, 가까운 미래에 예상될 거래까지 포함해서 저울질 한다. 거래 시점이 오래된 경조사비는 물가상승률까지 동원해야 하는 등 복잡한 셈법도 등장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작은 착오라도 생기면 개인 간 갈등이 유발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경조사비를 받은 측은 평소 친소관계를 고려한 결산을 하게 된다.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친 사람과의 거래에는 섭섭함이 앞서고 실망감 또한 꽤 오래 간다. 때로는 절친 사이의 돈독했던 신뢰 관계가 위협 받기도 한다. 한편 생각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경조사비는 고맙게 여겨지고 평생 기억에 남기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은 항상 손해 봤다고 생각하고 내가 약간 이득을 보았다고 여기면 상대방은 엄청 섭섭해 하는 법이다.

개정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자신이 받은 10만 원의 경조사비 중에서 정확히 5만 원을 되돌려 주지 않으면 형식상 범법자가 된다. 현실성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청렴사회로 가는 상징적 의미도 있고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사회의 건강한 경조사 문화가 정착되어 경조사비를 지출하는 측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여야 바람직 할 것이다. 반면 받는 측은 경조사비에 상대의 후의와 상부상조 정신의 프리미엄이 할증되어진 가치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김해뉴스 /강한균 인제대 명예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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