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식 시인·김해가야테마파크 사장

요즘 극장가에선 '신과 함께-죄와 벌'이란 영화가 화제다. 개봉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벌써 1,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다. 이 영화가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려내는 인간애는 천만이 넘는 관객에게 가슴 뭉클한 회한과 감동을 주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부모님과 가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장성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하니 아버지는 대뜸 '와, 무슨 일 있나?'라고 응대한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아들의 전화가 어색하기도 하고 염려스럽기도 해서다. 어른이 되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어릴 때의 아버지는 말 한마디 편하게 건네기도 어려운 크고도 먼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엄한 소리가 그저 억울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에 발을 내디뎌 직장인이 되고 자신의 가정을 꾸려 살다 보면, 문득 아버지만큼 살아 내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눈에는 사랑과 미움, 존경과 무시, 선망과 질투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공존한다. 그래선지 대개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화는 원활하지 않다. 좋게 시작하더라도 결국 아버지는 훈계하고 아들은 불만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기에 십상이다. 그래도 은근슬쩍 먼저 말을 걸어오는 쪽은 대부분 아버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음을 열어둬야 하는 이는 아버지뿐만 아니다. 어른이 되면 수많은 사람을 새로 만난다. 학생일 때는 학교라는 한정된 환경에서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마음 맞는 친구만 골라 친해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직장 동료도 생기고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하며 친목 모임도 한다. 결혼하면 배우자의 친구들도 알게 되고, 학부모들과의 관계도 형성된다. 처음에야 별 뜻 없이 관계를 시작하지만, 그중에는 정말 친해지고 싶은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만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서로 교감하는가이다. 114에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사랑합니다, 고객님.' 생면부지의 여성이 예쁜 목소리로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야 하는 나도 당황스럽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그 사람의 처지도 어쩐지 딱하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그 한 마디로 전화를 건 사람과 받은 사람 사이에 진심 어린 교감이 일어나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교감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라 그렇다. 우리를 스쳐 가는 수많은 만남 속에 주저 없이 절친이라 부를 수 있는 단 한 명만 남기더라도 괜찮다. 마음을 열어라. 어쩌면 당신의 평생 절친은 아직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새해가 되면 운세를 보고 대운이 들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맹자>의 대가, 금곡 하병국 선생은 대운을 받으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말이 적고 둘째 수식어가 적으며 셋째 얼굴빛이 좋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벗은 신발을 바로 두는 일처럼, 아주 작은 일부터 자신을 스스로 거두는 마음이 성공의 요체라는 뜻인 것 같다. 작은 일도 세심하게 챙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생각해 보자.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고, 큰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그 일을 평생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저 시간을 때우며 일당을 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일당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어간다. 고객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학습하고, 잘 되는 매장은 어떤 곳에 자리 잡는지를 궁금해하며, 재고 관리 방식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이라면 그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을 누리며 자신도 모르는 새 미래의 자산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작은 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작은 일부터 제대로 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작지만은 않은 통찰을 줄 것이다.

우리에게 지워진 운명적 삶의 굴레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다. 한 순간씩, 하루씩 살아내고 버티다 보면 운명의 굴레가 나의 수레바퀴로 바뀔 것이다. 인생이란 성공이냐 실패냐의 승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늘 자신을 돌보면서 지속해나가는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김난도 선생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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