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형 선임기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개최한 대형 이벤트라면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에 이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88올림픽은 폐쇄적인 군사 정권 시대를 마감하고 국제화 시대로 나아가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념이 달랐던 동구권 나라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과거 반쪽 올림픽들을 극복한 데 이어 '북방 외교'를 단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14년 후에 열린 '2002년 월드컵'. 세계가 깜짝 놀랄 고도성장을 이뤄내고도, 까닭 모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자부심을 심어주는 계기로 작용한 이벤트였다. '조선 명태는 안 된다'는 식의 자기 비하를 일삼던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하나가 되는 모습은 전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응원을 마친 후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진 시민'의 자부심이 싹텄다. 끈질기게 따라 다니던 2등 국민의식을 벗고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자리 잡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세계 초일류를 지향한다"는 카피라이트가 등장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또다시 16년이 지난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하나가 되는 열정'. 축제 분위기 속에서 얼굴을 내민 슬로건이 왠지 가슴에 걸린다. 핏줄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 그런 아픔 때문이지 평창올림픽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다른 명칭을 부여받았다. 

'평창 평화 올림픽'
 
핵실험을 계속하던 북한이 대륙간 탄도탄까지 쏘아 올린 상황 속에 진행되는 올림픽. 그것도 모자라 개막식 하루 전날 창군 기념 열병식을 거행하면서 핵 무력을 과시하는 북한을 TV로 지켜본 각국 선수단에게 과연 '평화올림픽'이라는 용어가 적절하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과거 88올림픽도 전 국민이 최루탄 가스로 뒤범벅이 된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와중에 열렸었다. 게다가 IMF 사태로 전 국민이 실의에 빠졌던 시절에 준비했던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해보라. 터키와 3~4위전이 열리던 날 북한 함정이 도발했던 제2연평해전을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런 아픔을 딛고 대성공을 거두었던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한다면 2018년 평창 올림픽은 상대적으로 고무적인 측면도 있다. 남북이 여자 하키 단일팀을 구성하고 북한 예술단이 평창을 찾았기 때문이다. 백두혈통을 자랑하는 김여정과 행정부 수반인 김영남이 남한을 찾은 것도 또 다른 성과다. 꽉 막혔던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자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평창 올림픽은 지구촌 청년들이 평소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치는 스포츠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국과 중국도 단순한 탁구 경기를 통해 대화의 물꼬를 터면서 동서 냉전 시대를 마감하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았던가. 평창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참가한 선수들 하나하나가 페어플레이 정신을 발휘하면서 도전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마음의 문을 열 때, 이념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질 것으로 목청껏 응원을 보낸다.    
 
지구촌 청년들이여 마음껏 평창을 질주하라!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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