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 희곡에 영감 얻은 뭉크 등
서로 영향 끼친 회화·문학 소개
미켈란젤로, 백남준 등 다양


 
문소영의 <명화독서(名畵讀書)>는 부제를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라고 붙인 것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거나 같은 맥락의 철학적·정치적 지향을 가진 동서고금의 회화와 문학 작품들을 함께 풀어헤치며 인생 탐색의 여행을 떠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과 미술은 서로 영감의 원천이었다. 가장 오래된 문학인 신화는 서양 회화의 단골 소재였고, 동양에서는 시화일률(詩畵一律) 즉 시와 그림이 동일한 이념과 과정에 의해 창작되어야만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여겼다.
 
시각 문화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작업을 줄곧 해온 저자는 명화 한 점을 꺼내놓고 그와 관련된 고전을 펼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문학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을 다루기도 하지만, 그림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문학 작품에도 스토리를 입힌다. 직접 상관은 없지만 시대정신과 인생철학이 상통하는 명화와 고전 작품을 연계시켜 맛깔스럽게 버무리기도 한다.
 
그렇게 풀어가는 그림과 문학 이야기들은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궁극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언급하는 작가와 작품들은 동서고금에 걸쳐 폭넓고 다채롭다. 문학 작품으로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시작해 셰익스피어,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보르헤스, 베케트와 브레히트, 그리고 박완서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미술 작품 또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부터 빅토리아시대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인상파 빈센트 반 고흐, 윌리엄 블레이크의 채색 판화와 백남준의 설치미술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이 같은 작품들의 정치사회적 의미와 오늘의 시대적 고민을 연결시키는 저자의 자유로운 작품 읽기와 정교한 해석이 돋보인다. 가령,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의 가르침 '카르페 디엠(오늘을 잡아라)'을 담고 있다. 그런데, 카르페 디엠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비롯됐다.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기 위한 시대를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 읽기의 독법이 유려하다.
 
저자는 또 입센의 작품 <유령>의 열렬한 팬이었던 뭉크의 그림 '유령'을 비롯해 '절규' '불안' 등 일련의 미술 작품들과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유령>을 동일한 정서적 맥락에서 파악한다. 뭉크가 입센의 <유령>에서 진실의 은폐와 허위로 지탱되는 사회 밑을 흐르는 은밀한 공포와 참을 수 없는 불안에 깊이 공감했듯이, 저자는 이 두 작가 모두가 "위선적 평온 밑에 꿈틀거리는 불안이라는 주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중요하게 언급한 크람스코이의 그림 '관조하는 사람' 등 그의 여러 그림을 마주하며 저자는 크람스코이를 '인간 영혼 심연의 사실주의자' 도스토옙스키의 미술가 버전이라 불러도 좋겠다고 말한다. 
 
또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백미인 '대심문관' 부분은 크람스코이의 '광야의 그리스도'와 함께 보면 더욱 강렬하다고 제안한다. 사탄이 광야에서 그리스도에게 던진 세 가지 유혹을 통해 회의주의자 이반이 인류에 던지는 질문, 그에 대답해야 하는 박애주의자 수도사 알료샤의 고뇌가 한층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귀스타브 도레, 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 그림들은 이상과 현실의 충돌이라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투르게네프가 자기애와 회의주의의 상징적 인물인 햄릿을 비판하고 세계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돈키호테라고 역설한 것에 대해 저자는 "돈키호테가 초래한 각종 민폐를 비롯한 돈키호테형 인간의 부작용을 축소하고 있으며, 햄릿처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행동의 결과를 부작용을 포함해 따져보는 것은 지성인의 속성이자 의무"라고 균형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이 책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금할 때' '사랑에 잠 못 이룰 때' '인간과 세상의 어둠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상상력을 찾아서' '꿈과 현실의 괴리로 고통스러울 때' '일상의 아름다움과 휴머니즘을 찾아서' 등 6장으로 나눠 독자들을 초대한다. 김해뉴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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