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형 선임기자

1938년 9월 29~30일. 독일 뮌헨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4개국 정상 회담'이 열렸다. 불과 20여 년 전에 벌어진 1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소집한 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독일의 히틀러는 "체코 슈데테란트 지역을 차지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가 동의하면서 프랑스를 설득했다. "전쟁을 피할 수 있으면 체코 땅쯤이야 누가 가져도 상관이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불과 1년 뒤, 독일이 슈데테란트 지역을 거점으로 유럽에서만 5천만 명이 희생되는 2차 세계대전에 불을 당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왜 그런 오판을 했을까. 인기에 연연한 정치인의 속성에서 답을 찾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비슷한 시기에 시행된 영국 보궐 선거에서 "군대 무장 해제와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운 노동당이 압승을 거둔 사실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연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 최근 북핵 사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당시 체코의 상황과 비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북핵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남한인데도 북미 대화가 우선'이라는 국제 여론의 흐름이 당시 체코를 둘러싼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김정은 노동당 군사위원장) 
 
"북한은 세계가 본 적이 없는 분노와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반도를 핵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이 수시로 오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의 모습도 당시 뮌헨회담의 분위기와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반도의 미래를 아주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북핵 사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본적인 지향점을 마련해 둔 상태에서 빚어진 갈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비핵화로 가는 해법도 이미 제시되어 있다. "한미합동군사 훈련만 중단하면 지금이라도 비핵화를 단행할 수 있다"는 북한과 "핵무기를 전면 폐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미국 측의 입장이 다를 뿐이다. 해법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 순서만 다르다는 뜻이다.   
 
이처럼 아주 단순할 수도 있는 사안인데도, 북한과 미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상호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부족해서 극한으로 대립하는 북한과 미국. 그 틈새를 메우려면 양측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 중재자가 한반도 비핵화에 따른 평화 정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낼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 5일 대북특별사절단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을 만난 것도 바로 그런 차원에서 진행된 노력이다. 그 다음날인 6일, 우리 측 특사단이 북한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돌아온 것도 한걸음 진전된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재자 역할도 반드시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본 목표에만 전념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오는 6월 13일로 예정된 제7회 지방자치선거를 겨냥한 득표전략 차원에서 대화를 진행했다가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80년 전 치명적인 오판으로 2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체임벌린 영국 총리처럼 말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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