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 높은 덕수궁 돌담길.



근대사 흔적 남은 최초 다문화 거리
아펜젤러가 문을 연 정동제일교회
러시아공관 ‘탑신’ 남은 언덕 공원
서울 가정법원 자리엔 시립미술관


 
돌담길을 따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산책길. 우리나라가 처음 문을 열던 시절, 전 세계에서 몰려온 외교 사절단들이 가장 먼저 터를 잡았던 국내 최초의 다문화 거리. 푸른 눈을 가진 선교사들이 붉은 벽돌로 교회를 짓는 등 파란만장했던 근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동길을 걷는 여정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가슴으로 시작됐다.

서울도시철도 1호선 서울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만나는 덕수궁 대한문. 고종황제가 세계만방에 대한제국 출범을 선포한 곳이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조선 옷을 입은 수문장 이 창을 들고 지키는 대한문 왼쪽 옆으로 돌담길이 시작된다.
 

▲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돌담길.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은 남녀는 헤어진다"는 속설이 나돌면서 일반 산책코스로 자리 잡았다는 길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속설이 나돌기 시작했을까.
 
의문에 대한 해답은 덕수궁 정문에서 돌담길을 따라 3분 거리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제시한다. 붉은 벽돌로 지은 서울시립미술관. 본래 서울가정법원이 사용하던 건물이라고 했다. 서울가정법원을 찾는 남녀는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가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그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남녀가 헤어지는 길'이라는 속설이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시립미술관을 돌아 나오는 길목에는 ‘온기 우편함'이 있다. "소중한 고민을 적은 편지를 넣으면 '느린 손편지'로 적은 답장을 보내준다"는 우편함이다. 어느 대학생의 아이디로 시작된 ‘사회 운동’ 차원이라고 했다. 편지에 담긴 사연에 대한 답장은 자원봉사자들이 컴퓨터 자판이 아닌 자필로 쓴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 사연을 적어 넣으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낸다는 온기 우편함.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사연을 꼼꼼히 읽어보고 답장을 보내는 자원봉사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덕수궁 돌담길을 감싸주는 햇볕만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온기 우편함에서 2분가량 걸어가면 정동제일교회가 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지만/ 언덕 및 정동길엔 아직도 남아 있어요/ 눈 덮인 교회당..."
 
가수 이문세가 불렀던 히트곡 '광화문 연가'의 가사에 등장하는 바로 그 교회다. 1887년 미국에서 온 전도사 아펜젤러가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회라고 했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 한글학자 주시경, 최초의 여의사 박 에스더 등 우리나라 근대사를 이끌었던 인물들을 배출한 교회라는 안내문이 벽면에 적혀있다. 3·1운동 때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을 치른 곳이라는 대목에 묘한 감동을 준다. 이처럼 파란만장했던 근대사를 함께 했던 정동제일교회지만 정동길을 걷는 신세대들이 바라보는 눈에는 평범한 교회 중 하나일 뿐이라는 표정들이 담겨있다.
 

정동제일교회를 지나면 덕수궁 돌담이 열리면서 덕수궁 중명전이 눈에 들어온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면서 고종 황제가 임시거처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했다. 바로 그다음 해인 1905년,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이 맺어졌던 장소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렇게 치욕스러운 역사를 지닌 중명전을 굳이 덕수궁 돌담의 일부를 걷어내면서까지 산책객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 파란 많은 역사를 지켜 본 정동제일교회 담벼락.

 
씁쓸한 가슴을 안고 도착한 정동공원. 1894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의 칼에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몸을 숨겼던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자리에 조성한 공원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공원에는 러시아 공사관 탑신이 남아 있다.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 올라간 정동공원. 불과 1년 전, 촛불 시위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광화문 네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그런 사건을 딛고 민주주의가 성숙한다면, 100여 년 전 우리 국민의 가슴에 큰 못을 박았던 근대사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 공원을 조성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봄볕이 인사하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가슴 속 깊이 감추어 두었던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속삭이듯이 들추어내는 정동길. 바쁜 일상 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산책길이었다. 

김해뉴스 /서울=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서울 정동길
가는방법=서울역에서 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한 구역 거리인 서울시청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가면 덕수궁 대한문이 나온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