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과이웃 포커스! 이 사람
시각장애인 조영춘 씨, 스무 살에 실명… “포기 말고 꿈 이루세요”포커스! 이 사람 - 시각장애인 조영춘 씨
  • 수정 2018.03.14 10:49
  • 게재 2018.03.07 10:03
  • 호수 363
  • 18면
  • 조나리 기자(nari@gimhaenews.co.kr)
▲ 시각장애인 조영춘 씨가 다사다난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1990년 군 복무 중 폭발 사고
1급장애 안고 500명 기업 운영
사업실패 후 봉사활동으로 새 삶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스무 살 청년이 불의의 폭탄 사고로 한순간에 모든 시력을 잃게 됐다. 창창하던 인생은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게 된 그의 눈처럼 캄캄해진 듯했다. 그러나 청년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살아냈다. 그 사이 청년은 대규모 회사를 이끌기도 하고, 부도로 모든 것을 잃기도 했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28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에 도전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김해 어방동에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1급) 조영춘(48) 씨는 지난달 23일 ㈔대한안마사협회 부설 안마수련원을 졸업했다. 그는 2년간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끝에 국가에서 인정하는 정식 '안마사'가 됐다. 
 
특히 조 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택에서 마산합포구에 있는 수련원을 오가며 성실하게 수업에 임한 끝에 수련 기간 중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우등상과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배우고 익힌 것으로 조그마한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다. 또 이 재능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안마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 조 씨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그 인생의 굴곡은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갔던 군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입대한 강원도의 육군 포병대대에서 폭탄 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1990년 5월 23일. 사고가 났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후임병 한 명이 팽이 모양의 폭탄을 호주머니에 지니고 있다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어요. 순간 빛이 번쩍하면서 몸이 붕 떴고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어요. 순간 세상이 캄캄해졌고 그렇게 정신을 잃은 후 다시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 사고로 현장에 있던 군인 8명 중 2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6명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사고로 혼수상태에 있었던 조 씨는 수일 만에 정신을 차렸다. 당시 눈은 붕대로 가리어져 있었고 얼굴을 비롯한 가슴 위 상반신에는 폭탄 파편이 박힌 채였다. 치료 중에도 실명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조 씨는 시간이 가면서 차츰 실명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듬해 그는 의병제대를 하게 됐다. 
 
군에서 나온 그는 실명의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장사에 뛰어들었다. 슬픔에 빠져 있지 않고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그의 몸부림이었다. 그는 꼬치 가게, 소방물품 판매점, 공예학원 등 닥치지 않고 관심 분야의 일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는 불어났고 그는 수산업 기업을 설립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으면 사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눈이 보이는 사람이 집 청소를 하면 30분이면 끝나지만 눈이 안 보인다면 1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더 힘들고 수고해야 하지만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그는 건설업, 무역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켰고 한때 계열사를 포함해 전체 직원 수가 500명이 넘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외상없이 기업을 운영했던 그는 1997년 IMF 위기도 잘 넘겼지만 2000년 초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줄줄이 넘어지게 됐다. 
 
이후 조 씨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모아둔 돈도 모두 사용한 그는 가족들의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생활을 했고 10여 년간의 끝없는 실패 끝에 사업에 대한 꿈을 접게 됐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에 나섰다. 요양원과 장애인시설을 찾아 안마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조 씨는 김해시, 경남도, 국회의원 등에게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요양병원에는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말동무가 돼 드리고 안마를 해드리면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기뻐하셨다. 내 손길이 필요한 곳에 간다는 게 행복해 봉사를 이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로 시작한 안마에서 또 다시 인생의 길을 찾게 된 그는 유독 자신에게 엄격했던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든 꿈을 꾼다면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한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문제입니다. 큰 꿈을 갖고 도전한다면 누구든지 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꿈을 크게 꾸고 나아간다면 그 꿈의 일부라도 이룰 수 있으니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나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분양가 싸지만 위험 부담 큰 ‘지주택’… 사업 진행 꼭 확인을분양가 싸지만 위험 부담 큰 ‘지주택’… 사업 진행 꼭 확인을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비밀글로 설정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