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숲이 터널처럼 덮여 있고 오솔길 같은 편안하고 온화한 능선이 많은 경운산 산행길에서 만난 역동적인 나무 뿌리들. 영역 표시라도 하는 듯 인상 깊다.   사진=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9월 매미들의 마지막 노래가 절정이다. 대나무 숲 참새소리도 왁자하다. 소나무들은 세월의 더께를 묵묵히 견뎌내며 잘 자랐다. 구부러질 때 구부러지고 뻗을 때 뻗으며, 그들의 일생을 긴 그림자로 남긴다. 그 밑으로 쑥부쟁이가 보랏빛 꽃잎을 살랑이고 있다. 수인사 입구의 정경이다.


이번 산행은 부드럽고 온화한 능선을 가진 경운산(慶雲山·378m)을 오른다. 들머리를 내외동 수인사로 하여 전망대, 체육공원, 경운산 정상을 타고 삼계사거리로 하산하는 코스다.
 
수인사 주차장에 서니 우선 낭랑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기분 좋게 귀를 간질인다. 수인사유치원이 절과 연하여 있기 때문이다. '올망졸망' 재잘거림이 참 예쁘게 들린다.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유유자적하다. '만다라의 세계'로 거슬러 오르는 쌍어(雙魚)의 몸짓이다. 가락국 신어(神魚)인 '두 마리의 물고기'가 찰박찰박, '부처의 집' 산문(山門)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천왕상을 지나며 뒤돌아보니 통현문(通玄門)이란 현판이 보인다. 사물의 깊고 미묘한 이치를 깨닫는 문이다. 오호라! 부처의 집에 들었다가 물러날 때, '통현'하여 '문을 나서라'는 뜻이렷다. 처음 개산(開山)한 이의 배려가 참으로 향기롭다.
 

▲ 수인사 경내. 오른쪽 건물이 대웅전인 대적광전. 푸른 잔디와 함께 가람의 배치가 편안해 보인다.

대웅전인 대적광전(大寂光殿). 말 그대로 '두루 고요하고 빛으로 충만한 집'이다. 우주의 충만한 진리를 설파하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하였다. 경내도 푸른 잔디로 부드럽게 덮여 있고 가람의 배치도 편안해 보인다. 현판 글씨들도 예사 아니다. 힘이 있으나 거칠지 않고, 묵직하지만 활달한 서각(書刻)들이다. '중용'의 의미가 새삼 와 닿는 듯하다.
 
절 길을 나서려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송편을 빚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물조물 반죽에 팥소를 얹어 꼭꼭 다지는 것이다. 구수한 냄새가 아이들 젖내처럼 폴폴거린다. 모두 한 번씩 볼을 꼬집어주고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비구니 스님과 송편 만들기에 열중이다. 가만 보니 이 아이들의 '송편 만드는 일' 또한 '불심'이겠거니 싶다.
 
수인사 옆 자연석 계단으로 들어선다. 예전에는 타이어 계단이었는데 최근 자연석을 새로 놓은 모양이다. 산행의 본격적인 들머리라 하겠다. 숲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온갖 새소리가 다 들려온다. 새소리마저도 어깨에 얹고 산길을 오른다.
 
곧이어 돌탑 하나. 무명의 길손들이 돌 하나에 염원을 담아 하나하나 쌓아올렸을 것이다. 그들이 던진 돌의 무게만큼 그들의 근심과 고통도 덜어졌을까? 그들을 생각하며 돌탑에 조심스레 돌 하나 보탠다.
 
길가로 억새꽃이 피고 여뀌꽃도 한창이다. 계단길이 시작되고 그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 삼나무 숲이 펼쳐진다. 옆으로 목마른 계곡이 빈 몸을 드러내고 누웠다. 잠시 뒤 너럭바위에서 뒤돌아보니 아직까지는 울울창창한 숲. 그 뒤로 임호산 능선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경원산 첫 약수터가 눈에 들어온다. 노천 약수터 '찬물샘'이다.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온몸이 시원하고 갈증이 일시에 풀리는 느낌이다. 시설도 소박하다. 노천 약수에 바가지 하나가 길손을 맞는 전부이다.
 
풀냄새는 더욱 짙어지고 새소리는 더욱 왁자해진다. 가을이 오려는지 나뭇가지 끝부터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두 번째 노천약수터. 파이프에서 투명한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 밑으로 바가지 하나 받쳐 놓았다. 한 모금 마셔본다. 시원~하다. 산이 주는 물맛, 더 이상의 설명이 무에 필요하랴. 서서히 경원산 능선이 수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오르막도 끝인가 싶다. 땀은 상쾌하게 흐르고 묵직한 발걸음은 오히려 기분 좋은 피로감으로 다가온다. 드디어 전망대 입구 능선에 오른다. 주촌 고개 가는 길과 정상으로 가는 길이 맞닿는다.
 
길을 걸으며 집에서 얼려온 생수 한 모금 마신다. 뒷덜미가 시원해진다. 길가로 무덤이 몇 개 보인다. 근래에 벌초를 했는지 묏등이 가지런히 시원하다.
 
곧이어 전망대에 선다. 김해 시가지가 환하게 펼쳐진다. 분성산, 남산 능선과 임호산, 함박산 능선이 김해를 품에 안고 누웠다. 그 너머로 김해평야가 펼쳐지고 서낙동강과 해반천이 여유롭게 흐른다.
 
이들 품에서 김해는 도시개발의 커다란 성채를 이루고 있고, 구지봉과 봉황대 사이로 국립김해박물관과 신석기조개패총, 대성동박물관이 가락국의 찬란한 '역사의 언덕'을 이루고 있다. 그 사이로 김해경전철이 과거와 미래를 서로 교차하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능선길로 접어든다. 여느 능선과 달리 나무숲이 터널처럼 덮여 있어 걷기가 여유롭다. 마치 오솔길 같다. 편안한 산이라 그런지 가는 길 곳곳이 무덤이다. 사람과 친숙한 산이란 반증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산도 제각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무덤이 많은 산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임호산이 악산이라면 경운산은 구름 위를 걷 듯 편안한 산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여유롭게 오르내리는 맛이 쏠쏠하다.
 
큰 바위를 감고 담쟁이덩굴은 기어오르고, 발치로 채이듯 보랏빛 맥문동꽃이 노루꼬리처럼 살랑인다. 철지난 뱀딸기도 빨갛게 익고 있다. 발밑께를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온산이 적요하다. 능선길이 이렇게 적요할 수 있을까? 머리 위로 하얗게 내리쬐는 햇빛과 와글와글 매미소리만 들릴 뿐 인적이라곤 없다.
 
내리막길을 편안한 걸음으로 걷다보니 삼거리 체육공원. 시설이 다양하다. 일반시설과 더불어 간이 인공암벽도 있고 그네도 있다. 잠시 평상에 앉아 양말을 벗는다. 평상에서는 주위의 바람이 다 모여들기에, 거풍하듯 양말을 벗고 발가락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을 느껴야 제 맛이다. 그렇게 잠시 신선놀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다시 신발 끈을 묶고 길을 나선다. 그늘을 적당히 만든 길에는 나무 그림자가 비추이고, 나뭇가지 사이로는 햇살이 부채살처럼 퍼져 간다. 그 길 위로 참나무 낙엽들은 무심히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고스란히 이 곳 길의 역사가 읽혀진다.
 
▲ 경운산 정상 표지석. 378m라고 산의 높이가 적혀 있다. 멀리 뒤편으로 분성산 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참 착하다. 부드럽다. 능선길이 '사랑하는 이'를 닮았다. 그만큼 깊은 정이 스며든 산이다. 군데군데 연리지(連理枝) 나무가 있는 것도 그러함 때문이리라. 그 애틋한 사랑 때문에 경운산이 마치 농염한 여인을 닮았다는 이들도 있다. 연리지의 꼬임을 보고 '남녀상열지사'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관능적인 면도 없잖아 있는 경운산이다. '착하고 부드러운 것'과 '농염하고 관능적인 것'이 경운산에서 하나의 의미로 합일되는 순간이다.
 
경운산 정상. 바람이 서늘하다. 정상의 바람이라 청량감이 더하다. 경운산은 예전에는 운참산이라 불렸다. 조선 초기까지 수인사 자리에 운참사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정상에 서니 분성산 능선이 길게 활개를 펴고 있고, 그 뒤로 신어산이 뒤를 받쳐주는 형국이다. 삼계동과 구산동 전경이 펼쳐진다. 국립김해천문대와 김해공설운동장, 가야대학교도 눈에 들어온다.
 
꽃술 펼쳐 손 흔드는 억새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능선길을 걷는다. 강아지풀과 쑥부쟁이들도 줄지어 따라붙는다. 매미 떼의 극성도 계속 함께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을 기분 좋게 오르내리고, 그 길 따라 줄을 잇는 나무숲과도 스쳐 지난다.
 
본격적인 하산길이 시작된다. 잠시 길을 잃어 가욋길로 다시 길을 잡는다. 인적이 드문 길에는 여뀌풀이 지천이다. 김해의 산에서 여뀌풀숲을 보니 반갑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수로왕이 가락국을 세우며 김해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땅은 협소하기가 여뀌잎과 같지만 수려하고 기이하여 가위 16나한이 살 만한 곳"이라며 "여기에 의탁하여 강토를 개척해서 마침내 좋은 곳을 만들 것"을 천명했다.
 
미루어 보면 그 시절 김해시가지는 바다를 경계로 둔 포구였을 것이고, 그 포구를 산이 에워싸고 있기에 적의 침입을 막기에도 용이했을 것이다. 또한 철의 생산지로서 '중개무역의 거점'이란 지형적 장점도 있었을 것이다.
 
수로왕의 생각처럼 가락국은 고구려, 백제와 비견되는 '철의 왕국'으로 번성한다. 고대국가에서 강국으로 평가받는 기준이 철이었기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고대 삼국시대를 가야제국과 함께 4국시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 여뀌가 하릴없이 하산 길의 길손 옷소매를 자꾸만 붙잡는 것이다.
 
하산길 막바지. 길 위로 보라색 칡꽃이 낭자하다. 칡꽃의 진하고 달콤한 냄새가 그윽하다. 고개 들어 아무리 둘러보아도 칡덩굴은 흔적도 없다. 유심히 살펴보니 5~6m는 족히 넘을 노송을 타고 하늘을 덮었다. 흡사 하늘에서 칡꽃이 떨어지는 것 같다. 칡꽃을 '사뿐히 즈려 밟으며' 길을 재촉한다.
 
경사가 쏟아질 듯 급해진다. 로프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이러기를 몇 분, 날머리인 삼계사거리가 보인다. 도착이다. 하산을 반기는지 배롱나무 붉은 꽃들이 줄지어 반긴다. 아스팔트 위에 피어 있는 강아지풀들도 반갑게 '콩콩' 짖는다. '오요요, 오요요' 강아지풀을 부른다. 쫄래쫄래 따르는 그 놈들을 데리고 느릿느릿 속세로 돌아간다.


Tip.수인사 '와우산수인사' 현판과 심진대 ───────
소가 엎드려 누워 있는 부드럽고 편안한 산세
경내 바위 '심진대' 흐린 날 또렷 …'참 나'를 찾는 염원 서려

수인사 앞 연못에서 보면 백련의 하얀 꽃잎 위로 '와우산수인사(臥牛山修仁寺·사진)'란 현판이 보인다. '와우산'이란 경운산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소가 엎드려 누워 있는 형상'처럼 산세가 부드럽고 편안해서 붙여진 산 이름이다.
 
원래 수인사 자리는 조선 초기 운참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이다. 동국여지승람과 김해부내지도에도 운참사라 표기되어 있다. 김해읍지에도 김일손이 운참사의 승려 지즙에게 보낸 글이 실려 있어 그 유래를 짐작케 한다.
 
그 후 운참사 옛터에 경운재가 있다가 1956년 현재의 비구니 절 수인사가 세워진다. 경내에 부설 유치원이 있어,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정갈한 도량이다. 이 수인사 경내에는 심진대(尋眞臺)라는 바위가 있다. 글씨가 닳아 잘 보이지 않지만 흐린 날 자세히 보면 한자로 '尋眞臺'란 글씨가 보인다. 이 바위에 새겨진 '심진'이란 '참을 찾는 곳'이라는 뜻. 즉 '참 나(眞我)'를 찾는, 참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염원이 서려 있는 곳이다.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심진대'란 글자는, 보는 사람의 마음과 날씨, 시간 등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단다. 중생들이 '참 나'를 찾아서 성불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설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최원준 시인 /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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