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김해 서상동 '김해이주민의 집'에서 갓 한국에 온 새내기 이주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무 여건 좋다’는 소문 듣고 찾은 한국땅
빨리빨리 문화 적응 힘들고 사업주 횡포에 실망

억울하고 답답함 느낄 때 생각나는 ‘김해이주민의집’
직장 잃어 오갈 데 없는 이주노동자들 든든한 쉼터

네팔 인터넷 소식지 발행해 크고 작은 고민 해결
최저임금제 여파로 식대·특근비 삭감 민원 많아
도산 기업 속출… 노동청 연계한 구직활동 어려워

기피 업종 마다 않고 기술 익힌 이유는 ‘가족사랑’
금의환향 하는 날 기다리며 오늘도 ‘나마스테’




김해 서상동 수로왕릉 옆 골목 안에 '김해이주민의 집'이 있다. 말 그대로 이주민들을 위한 집이다. 억울하고 답답한 이주노동자들이 상담도 하고, 직장을 잃어 당장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은 한끼 밥과 하룻밤 숙소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곳의 운영자는 '이주민의 대부'로 알려진 네팔 출신 수베디 여거라즈 목사. 그런 만큼 이곳은 이주노동자에게 아주 든든한 영혼의 쉼터 같은 곳이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여럿이 일요일 오후 여기에 모였다. 인근 동상시장에서 장도 보고, 친구들도 만날 겸해서다. 히라(37)는 한국에 온 지 이제 3개월밖에 안된 새내기 이주노동자 루산(41)과 라이(35) 그리고 나따(38)를 데리고 왔다. 김해 지리도 익히고 이곳 물정도 배워야 하니까.
 
라이는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 한국에 와서 일해 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좀 다운 됐어요"라고 어물거린다. 꿈에 부푼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대를 가지고 한국에 왔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사람들 간에 서로 통해야 하는데 그게 안돼요." 라이가 일하는 곳은 네팔 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섞여 있다. 서로 말도 안 통하고 생활 습관이나 문화도 안 맞다. 
 

▲ 지난해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네팔 홍보행사.

9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캠(37)이 옆에서 거든다. "한국에 올 때는 누구나 기대가 커요. 한국에 가면 일하기 편하고, 대우도 잘 받고, 좋은 말 쓴다고 하거든요. 근데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X새끼'에요. 일 시키면서 욕하는 게 보통이니까. 사장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팔은 국민들의 정신적 만족도가 아주 높은 나라다. 히말라야 산맥과 함께 은둔과 평화,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삶, 그리고 겸손과 순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곳에서 살다가 한국에 일하러 왔으니 이런 저런 충격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 열심히 해요. 그러니까 발전을 했죠. 그런데 뭐든지 빨리빨리에요. 빨리빨리 너무 힘들어요. 네팔도 발전해야 하지만 좀 천천히 했으면 좋겠어요." 네팔은 10여 년 전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어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이다. 아직은 불안정한 정치환경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고,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보면 가족들끼리 주말에 놀러도 가고 즐겁게 놀아요. 우리는 한 명 일해서 가족 모두를 먹여살려야 하니까 그런 여유가 없어요." 도금회사에 다니고 있는 히라의 말이다. 히라는 고향에서 부모님이 쌀과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다. 고향에 3살과 9살짜리 딸을 두고 한국에 온 지 3년째다. 
 
"타국에서 고생하는 게 슬플 때도 있어요. 한국에 올 때 가졌던 계획들이 제대로 될까, 또 생각한 만큼 돈은 벌고 있는 건지 걱정도 되구요." 한국에 온 지 3년째인 크리스나(31)의 하소연이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크고 작은 고민들을 함께 나눈다. 한국에는 네팔 인터넷 소식지가 7개가 있다. 서울 대구 대전 부산 등 전국에 있는 이주노동자 35명이 기자가 되어 뉴스들을 올린다. 캠은 그 중 파르디시라이프(www.pardeshilife.com)에 소속되어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캠은 네팔에 있을 때 신문사 기자로 5년 정도 일했다.
 

▲ 지난해 9월 부산 사상구에서 열린 ‘외국인근로자 추석맞이 문화한마당’에 참가한 네팔 이주민들.

"요즘은 최저임금제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요. 올해부터 월급이 오르니까 사장들이 식대를 따로 안 준다. 이제부터 숙소비나 전기료를 받겠다. 특근비나 보너스를 줄이겠다 같은 민원이 많아요."
 
최저임금제 여파가 한국의 저임금노동자들과 유사한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불어닥친 상황이다. 
 
기자정신을 발휘해 캠이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하나 더 토로한다. "회사가 문을 닫거나 일감이 줄어들면 다른 회사로 가야해요. 그런데 노동청에 가면 잔소리만 하고 일자리는 잘 안 알아봐 줘요." 고용허가제에 따라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다니던 회사에 사정이 생기면 3번 회사를 옮길 수 있다. 이때 노동청이 다른 회사를 구해 줘야 하는데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호소다. "노동청에서 자리가 있다고 가보라고 해서 그 회사에 가면 일자리가 없대요. 또 김해에 일자리를 신청했는데 밀양이나 진해 쪽으로 가라고 하기도 하고요."
 
일자리는 끊기고 다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오갈 데 없는 낭인 생활을 해야 한다. ‘김해이주민의 집’은 그들에게 숙식과 쉼터를 제공한다.
 
히라는 그 와중에 한국에서 농사 교육을 받았다. 김해이주민의 집과 김해시가 손잡고 '외국인 근로자 농업기술학교'를 지난해 세운 덕분이다. 히라를 포함한 네팔 출신 노동자 24명이 처음으로 입학했다.
 
"6개월 동안 주말에 한번 출석해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딸기 재배 방법을 배웠어요.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시니까 집에 돌아가면 기계화된 농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린하우스도 짓고."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 크리스나는 자동차 기술을 배워서 고향에서 자동차 정비센터를 열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한국처럼 영농기계화 해서 멋있게 농사짓게 하고 싶다.

캠은 네팔로 돌아가면 신문사를 세우거나 무역 일을 하고 싶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온 친구들은 그래서 꿈이 크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