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서부의 항만도시이자 산업도시인 리버풀은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의 고향으로 더 유명하다. 
 
리버풀은 18~19세기 산업혁명 시기 급속히 성장했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핏줄 역할을 한 상선과 함선을 만들었다. 신대륙으로 북유럽인, 흑인노예를 실어 나르는 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리버풀은 특히 근대 하역 기술과 수송 체계, 항만 관리의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도시다. 해양산업도시로서 역사성을 인정받아 항만 관련 시설이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다. 
 
하지만 리버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항만도시이자 산업도시의 면모를 잃고 쇠락했다. 2000년대까지도 리버풀의 항만시설은 런던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설비를 갖춘 것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도시 배후지 산업의 침체, 미국 등과의 무역 감소로 과거 영화를 잃고 쇠퇴일로에 있다.
 
전문가들은 리버풀이 과거에 안주하면서 신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결과 역사 속 도시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대영제국의 심장 역할을 했던 리버풀의 쇠퇴는 도시가 시대적 환경과 여건에 적응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한반도 남부에서 가장 많은 중소기업들이 산재한 김해는 리버풀과 닮은 점이 많다. 리버풀 인구는 47만 8580명(2015년 기준)으로 53만 명 김해와 큰 차이가 없다. 배나 기계 만드는 '철의 도시'라는 점에서도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리버풀이 '비틀즈'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됐다면, 김해는 '노무현'의 흔적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곳이다. 
 
이렇듯 유사점이 많은 도시 김해가 리버풀의 전철을 밟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지역의 중견업체조차 최근 경기불황으로 경영난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 부품이나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대기업이 다른 하청업체로 물량을 배정하면 손을 쓸 도리가 없다. 기술력이 아니라 영업 여부에 따라 멀쩡한 기업도 하루 아침에 문을 닫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테크노밸리, 서김해산단, 대동첨단산단 등 산업입지가 지속적으로 조성되면서 조선, 자동차, 기계의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김해의 산업구조가 당분간 지속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김해의 기업이 이전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지를 찾는 부산·창원 기업이 이주해오는 경우가 많아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제조업의 현실은 빈 공장들이 넘쳐나고,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기업대출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해시는 스마트 부품과 소재 산업 육성을 '지역제조업의 미래'로 가닥을 잡고 관련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김해시청에서 점검회의를 가진 '스마트부품 연구개발 및 테스트베드 구축사업 용역'은 김해시, 경남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함께 추진하는 과제로 자동차, 통신기기, 의료기기 분야 등을 고도화하는데 필수적인 스마트 부품산업의 육성전략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점검회의에서 허성곤 김해시장은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지역제조업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계, 자동차, 조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신산업 창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허 시장이 지역제조업에 대해 시의적절한 현실인식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 허 시장과 김해시의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김해시가 차세대 먹거리 마련을 위해 도입한 김해의생명센터가 문을 연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 의생명산업이 지역산업의 주류가 되지 못한 것처럼 큰 성과를 내는 연구센터나 특화산단을 조성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의 모든 가용자원 뿐 아니라 정부부처의 전향적인 지원을 이끌어내야 스마트 부품과 소재를 제조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김해가 과거의 도시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새로운 고민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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