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쓰나미·원전사고 '삼중고'
참사 발생부터 수습 과정까지
간 나오토 전 총리 생생한 기록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이어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시스템과 매뉴얼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안전 문제에 관해서는 '세계 제일'을 자부하던 일본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 얼마 전 사고 발생 7주년이 지났지만 후유증은 아직도 크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선 오염이 다음 세기까지 지속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한다.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菅直人·71) 씨가 국정 최고 책임자로 경험한 사실을 써 내려간 기록이다. 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 등 '3중 리스크'가 동시에 폭발한 시점부터 수습과정, 탈(脫)원전을 결심까지 간 전 총리의 육필로 직접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더듬어 보자.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강진 발생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센다이 등 해변 도시들을 덮쳤고,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까지 건물 붕괴와 대형화재가 잇따르며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지상으로 밀려든 대규모 쓰나미로 인해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서 후쿠시마 원전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3월 11일 오후 8시께 1호기에서는 이미 멜트다운(Meltdown)이 발생했다. 멜트다운은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면서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해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 버리는 일을 말한다. 3월 12일 오후에는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어 3월 13일에는 3호기의 멜트다운, 15일에는 오후 6시께 2호기에서 충격음이 발생했다는 보고와 거의 동시에 4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사고 발생 직후 간 전 총리는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 최악의 가설에 근거해 기술적으로 예측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강제 이전 구역은 반경 170㎞ 이상, 희망자의 이전을 인정하는 구역은 도쿄를 포함한 250㎞로 약 5000만 명의 대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구역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된다. 아울러 대기와 바다를 통해 세계에 방사선을 뿌린다. 당시 상황에 대해 간 전 총리는 "나 자신도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고 핵에너지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어 "원전 사고는 잘못된 문명의 선택으로 야기된 재해"라며 "그렇다면 더욱더 탈원전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국민의 의사"라고 강조한다.
 
간 전 총리는 책에서 일본 사회가 원전 사고에 대비해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원전을 54기나 만든 것도 이런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며 "법률도, 제도도,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조차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관련법인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은 정작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고, 주무 기관인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원장 자리는 원전 전문가가 아니라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경제산업성 출신 '낙하산 인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간 전 총리는 퇴임 후 전 세계를 돌며 탈원전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5년 3월 중순에는 부산을 방문해 강연한 후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그는 "고리원전 반경 30㎞에 350만 명가량 살고 있다고 들었다"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내가 고민했던 것처럼 250㎞ 소개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은 국민 대부분이 해외로 피난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하면서 원전 철폐를 약속했다. 이후 공사가 20% 이상 건설된 신고리 5·6호기의 중단 여부에 관해 3개월간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같은 해 10월에 재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공사 재개 결정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북 포항에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커진 상태이다. 간 전 총리의 책은 원전 정책을 고민하는 한국의 상황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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