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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경관 거스르지 않는 ‘풍경의 건축’, 단순함의 미학 구현건축 문화 투어 (3)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부대시설
  • 수정 2018.03.28 11:49
  • 게재 2018.03.21 10:58
  • 호수 365
  • 16면
  • 이정호 선임기자(cham4375@gimhaenews.co.kr)
▲ 여민정 모습. 주변 바닥의 콘크리트와 같은 소재를 사용하고 구조를 단순화해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바깥과 연결된 공간의 일부처럼 보인다. 사진제공=건축사진작가 김종오

 

노 전 대통령 묘역 주변 부대시설물들
공원 조성되며 추모공간 모습 갖춰
자연친화적 삶 온실과 작업장에 스며
의자 높낮이와 배치도 다양, 세심한 배려
지붕 위 잔디 조경,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봄 햇살이 맑다. 5월 추도일이 가까워지면 햇살만큼 따스한 노란색 물결이 넘실거리겠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고인의 유지를 형상화한 묘역은 소박한 기품을 미소처럼 띠고 있다.

▲ 온실 및 체험시설. 잔디로 덮은 지붕이 뒤의 도로와 같은 높이이다(위 사진). 정토원. 마당과 데크 등을 뒤쪽에 배치했다.

스산했던 묘역 주변은 지난 2015년 생태문화공원으로 단장되면서 추모 공간으로서의 모습을 갖췄다. 물론 공간 배치에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이 고스란히 담겼다. 직무를 마친 뒤 귀향해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생태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주변 봉화산과 화포천을 가꾸겠다는, 작지만 큰 생각이다. 공원은 묘역을 중심으로 앞쪽에 생가와 사저 그리고 대통령 기념관이 모여 있고, 좌우에는 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 잔디동산과 농작물을 생산하는 온실과 경작지 등이 각각 자리 잡았다. '사람 사는 들녘'은 이 곳으로부터 발원하는 듯싶다.
 
많은 추모객들이 드나들고, 시시때때로 각종 행사가 치러지는데다 농사일까지 준비하기 위해서는 공원 내에 이런 저런 시설물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둘러보면 공원 내에 딱히 두드러지는 건물들은 없다. 한적하고 느슨한 여느 농촌 모습 그대로다. 생태문화공원의 시설물들은 그렇게 자신을 숨긴 채 조심스레 제 기능들을 하고 있다. 
 
묘역 바로 옆에 있는 여민정(與民亭)이 대표적이다. 참배객들이 오며 가며 다리쉼을 하고, 또 묘역과 공원을 소개하는 안내소 역할도 하는 시설이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콘크리트 긴 의자 몇 개와 기둥이 전부이다. 이도 길가 한 모퉁이에 벽의 일부처럼 붙어있다. 
 
"참배자들이 쉬거나 행사 뒤 리셉션을 하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추도식이 열리는 5월이면 햇살이 뜨거운데 주변에 그늘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건 지원시설이니까 묘역이나 생가 그리고 기념관 같은 주요 시설물을 가리거나, 시선을 빼앗아서는 안 되죠. 그래서 원래의 풍경처럼 주변을 거스르지 않게, 또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지었습니다. 풍경의 건축이라고 할까요."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부대시설 설계를 맡았던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이동수 소장의 설명이다.
 

▲ 여민정 내부. 콘크리트 의자의 높낮이가 다르고 배치도 비뚤비뚤하다.

여민정은 언덕 밑에 있어 위에서 보면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지붕 위에도 잔디로 조경을 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리게 했다. 앞에서 보더라도 무슨 시설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다. 이는 건축물의 재료를 주변의 공원 바닥에 깐 콘크리트와 같은 것으로 했기 때문이다. 벽이나 천정이 바깥의 광장 바닥과 같은 노출콘크리트여서 안과 밖이 구분 없이 서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주변과 이어지는 공간의 일부인 것이다.
 
여민정 안에 있는 긴 의자도 원래 콘크리트로만 만들었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아 나중에 나무판을 붙였다. 가만 보면 의자의 높낮이가 조금씩 다르고 배치도 비뚤비뚤 하다. 아이도 앉고 어른도 앉고, 어떤 이는 눕고 어떤 이는 앉고, 또 옆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놓아둔 것이다. 세심한 배려다. 마찬가지로 기둥도 지붕을 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와 수량만 두었다. 휴게 시설이라고 하지만 혼자서는 좀 허전한, 단순함의 미학이다. 
 
"흙길 따라 풀 꽃 나무를 함께 보면서 새소리 벌레소리 들으면서 길을 걷는 삶, 그것이 국민들의 복지다."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풀과 꽃, 새와 벌레를 이웃 하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생태문화공원의 한쪽에 체험논과 차밭 등 농경지는 그렇게 자리 잡았다. 봄이 되었으니 몇몇 이랑들은 도시농군들에게 분양돼 고추나 상추 호박 등속이 이리저리 꿈틀대며 싹을 올릴 것이다.
 

▲ 위에서 바라본 노 전 대통령 묘역과 생태문화공원 일부 모습.


이들 생산시설을 지원하는 부대시설이 온실과 작업장이다. 이들에도 '풍경의 건축' 취지가 스며 있다. 도로에서 보면 건물이 드러나지 않도록 건물을 도로보다 낮게 만들고 지붕 위에는 잔디로 조경을 해 마치 풀밭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건축 부재료로는 자연친화적인 나무를 썼다. 온실에는 지금 목화와 호박 등의 모종이 크고 있다. 나중에 체험장으로 옮겨질 것들이다.
 
생태문화공원에서 또 하나의 부대시설은 산 위에 있는 휴게시설 정토원이다. 봉하마을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간쯤에 원래 있던 작은 건물을 새로 지었다.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곳이었는데, 이전 건물은 산 아래에서 보면 모습이 드러나 돌출감이 있었다. 이를 조금 뒤쪽으로 옮기고, 마당과 데크 등은 건물 뒤쪽으로 숨겨 보이지 않게 했다. 지붕도 능선처럼 높낮이를 두어 산 정상의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의 부대시설들은 이렇게 있으면서 없는 듯한 모습으로 자신보다는 주변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대통령직을 마친 뒤 일개 농부로 돌아가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 생각의 흔적을 보는 듯하다.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부대시설 / 대지면적 112.2㎡, 건축면적 564.9㎡, 연면적 606.9㎡,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축작가 프로필 

▲ 승효상 이로재 대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5년간의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이로재(履露齋)를 개설하였다.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의 일원이었으며,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고자 '서울건축학교'를 설립하는데 참가하기도 했다.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건축의 중심에 두고 작업하면서,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지휘하던 그에게 미국건축가협회는 Honorary Fellowship을 수여하였으며,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2002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건축가 승효상전'을 가졌다.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활약한 그는 서울시 초대총괄건축가로 선임되어 2016년 직무를 마쳤다. 현재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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