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물탱크 자리에 들어선 문학관
정문 벽면엔 시인의 사진과 친필 원고
우리말로 시를 쓴 이유로 옥살이, 판결문
일본 유학 위해 창씨개명한 학적부 눈길
침묵 강요받던 시대 암시하는 '닫힌 우물'
천만관객 영화 못지않은 영상물 메시지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우물에 얼굴을 비추듯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살았던 시인 윤동주. 일제강점기, 만주 길림성에서 서울로 유학 온 시인이 인왕산 자락을 오르내리면서 감성을 가다듬었던 길목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마을주민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는 물탱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문학관이다. 비록 나라를 잃은 식민지 현실이지만 "우물 속에는 밝은 달이 있고 푸른 하늘이 있다"고 말했던 서정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문학관. 입구 벽면에는 시인의 얼굴과 함께 친필원고지가 새겨져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새로운 길 1935.3.5)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면 '시인채'라고 이름 붙인 전시실이 있다. 윤동주의 사진과 육필 원고 등을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를 지으면서 민족 감정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판결문과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기 전 친구에게 맡겨 두었던 육필 원고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그토록 민족을 사랑했던 시인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 도주(平沼東柱)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한 사실을 알려주는 학적부가 인상적이다. 시인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품이다. 만약 시인이 8·15 광복 후까지 살아남아 사회지도층으로 자리를 잡았더라면, 일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학적부를 근거로 '친일 논란'을 일으켰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시인 윤동주의 진짜 인간적인 면모는 그다음 코너에서 드러난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중략)//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창씨 개명한 이름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언덕 위에 묻어 둔 본래 이름이 자랑스러울 날이 올 것을 확신했던 시인 윤동주.
"시인은 오로지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라는 명언이 새삼 되새겨진다.
시인채 뒤편에는 정원처럼 꾸며놓은 공간이 있다. 본래 있던 물탱크 뚜껑을 열어서 햇볕이 들어 올 수 있도록 만든 실내 공간이다. 시인의 대표작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뜻에서 '열린 우물'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열린 우물 뒤편에는 '닫힌 우물'이 있다. 암울했던 시절,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상을 암시하듯 실내 분위기가 어두운 곳이다. 바로 그런 어둠 속에서 시인 윤동주의 일생을 영상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겸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지켜본 영상물. 여린 감성을 지닌 식민지 청년이 제국주의 총칼 앞에서 무력감을 감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픔을 '시적 언어'로 녹여내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비록 허름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영상물이지만 그 메시지만큼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일류 영화 못지않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우리말로 시를 쓰는 그 자체가 독립운동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에,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던 시인 윤동주. 과연 그는 조만간 닥쳐올 '슬픈 운명'을 몰랐던 것일까.
잠시 울컥하던 가슴을 달래주듯,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8·15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세상을 떠난 시인 윤동주.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시와 정신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서울=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서울 윤동주문학관
*찾아가는 길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서울 도시철도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려서 7022번 버스로 갈아타면 윤동주문학관이 나온다.
*관람 시간
1)오전 10시~오후 6시 (11~2월 오전 10시~오후 5시)
2)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추석, 설날은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