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권 시인

그리움을 가두는 바람이 분다. 바람은 잠시 몸 안에 고일 때, 거리의 나무마다 물집이 잡혔다. 저 멀리 산동에서부터 물집이 터져 산수유가 피어올랐다. 낙동강 건너편 가까운 순매원에서는 매화가 피고 벚꽃이 지천으로 흩뿌린다. 겨우내 몽글몽글 뿌리로부터 밀어 올린 나무의 물집, 푸르게 물드는 세상이 황홀하게 열리는 시간이다.

꽃이 피는 속도로 세상이 열린다. 시간의 향기가 흐르는 들판으로 나가보면 방울방울 맺혀 있는 이슬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어둠이 오고 고요가 내려앉은 밤의 풍경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밤사이 나무나 풀잎에 모여 앉은 물방울이 밤의 물집인 것이다. 이처럼 들판에 내려앉은 물집은 생명의 근원이 되면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에 있어서 물집은 어떤가?

사람에 생기는 물집은 나무나 꽃의 물집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물집이란 피곤하거나 몸의 컨디션이 나쁠 때, 손이나 발, 입술 등에 생기는 포진을 말한다. 계속되는 자극에 피부와 피부 층 사이, 림프액이 고여 만들어지는 물주머니인 물집은 누구나 한 번씩 생긴 경험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호주오픈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의 접전을 벌인 정현선수는 발에 물집이 생겨 남자단식 4강전에서 기권을 하고 말았다. 세계 제 일인자와 겨루는 경기에서 조그마한 물집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다. 또한, 마라톤 선수는 발바닥에 생기는 물집을 방지하기 위하여 발뒤꿈치부터 먼저 지면에 닫게 한다고 한다. 몸 어딘가에 물집이 생기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정현선수처럼 중요한 경기마저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어머님 손에 잡힌 물집을 본 적이 있다.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께서는 밭일을 주로 하셨기에 손과 발에 물집이 자주 나셨다. 그래도 어머님께서는 물집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묵묵히 일만 하셨다. 몸에 생긴 물집이 터지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쓰라리고 아픈 것을 감수하고, 나귀처럼 터벅터벅 해와 함께 서산에 가 닫는 것이다. 풀이 무성한 밭고랑을 차고앉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수고한 물집이었다.

신용목 시인은 "산수유 꽃"에서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저를 바람 속으로 돌려보내기 전 가끔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안다" 고 했다.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고 부풀면 진물이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화마가 지나간 흔적마다 통점으로 점령당하고 주둔지역 막사처럼 생기는 물집,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이 고통의 시간이 몸에 가둔 물집인 것이다.

이처럼 몸에 생긴 물집은 나무나 꽃의 물집과는 달라서 아름다운 풍경도 아닌 삶의 고통인 것이다. 어머니는 부르튼 손으로 당신이 걸어온 길을 쓰다듬는다. 물집 속에 빠져나온 것은 아픔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쓰다듬고 어루만지던 손길 속에 산수유보다 더 노란 물집이 터져 있는 것이다.

눈 뜨고 걸어도 보이지 않던 길이 물집 속에 있다. 나무나 꽃처럼 아름답게 터지지 않아도 투박한 어머니 손길 속에 있다. 묵묵히 몸의 끝 어딘가에 붙어서 일어서던 물집이 낯익은 얼굴로 박혀있다. 물집 잡힌 봄의 시간을 기억하는 동안 몸에 가둔 시간들이 딱지로 떨어지면서 야윈 생이 말라간다.

세상에는 아침마다 열리는 나무의 창문인 물집이 있다. 그것은 바람이 후후 불며 닦아야 하는 창문인지도 모른다. 창문이 열리듯이 환한 세상이 열리고 새가 울면 나무의 아픔이 치유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어떤 기억을 살리듯이 툭 터져 말라버리는 물집에 바람과 구름, 새의 울음을 투명하게 새긴다. 날카로운 햇살과 뭉툭한 달빛에 싹이 나듯이 돋아 나왔다. 나는 어머니 손과 발에 잡힌 물집에 한 번도 약을 발라 드리지 못했다. 김해뉴스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