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비극적인 학살 입체적 규명
"생존자·유족 삶 회복 지원해야"



제주 4·3과 여순 사건, 22사단 토벌 작전, 노근리 사건….
 
이들의 공통점은 1945년 이후부터 6·25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대량 살상이라는 점이다.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저자는 여러 형태의 유대인 학살을 홀로코스트라고 통칭하듯 이들 사건을 '민간인 학살'로 묶어낸다.
 
저자는 피해자 및 생존자 증언, 정부 자료 등을 토대로 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비극적인 학살을 입체적으로 규명해내고 있다.
 
'근대 이성과 제노사이드' '전쟁과 학살' '사상의 지배와 사찰' '피해자의 귀환'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등 총 5부로 나뉜 책은 학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량 학살에 대한 유엔의 무기력한 대응은 물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대량 학살을 눈감는 강대국들의 민낯은 여전히 고통으로 내몰리고 있는 민중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특히 인종청소를 위한 전쟁 도구의 하나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강간을 제노사이드 범죄의 확대와 고문으로 간주하고 상세히 짚어나가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책은 각종 사례를 통해 'G-단어(Genocide)'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학살이 삶과 정치에 미친 영향도 심도있게 파고들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사상의 지배와 정치적 의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학살이 일제 강점기부터 정부수립에 이어 지난 정부의 사찰과 감시, 검속 등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뿐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견해를 문제 삼아 일상을 통제하는 감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확대됐다.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하버마스가 말한 이른바 '생활세계의 식민화'인 셈이다.
 
생존자와 유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증언과 기억, 다양한 해외사례 등을 토대로 학살 이후를 다룬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와 이웃으로부터 버림받고 공동체에서 부정당한 이들이 삶을 회복하기 위해선 공동체 차원의 지원과 공동체 복원이 절실하다는 대목에 시선이 머문다. ‘학살은 고통과 비극의 문제이지만 한편으로는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은 마음을 묵직하게 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학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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