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장원을 찾아오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웃음으로 인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며 머리를 손질해 주는 배명자 원장.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일요일 오후, 부원동에서 서상동 초입까지의 거리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시민들로 가득하다. 그 거리를 걷는 어느 순간, 문득 기자가 이방인이 된 기분마저 든다.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여러 나라의 말들이 들려왔다. 쇼핑가방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거나, 옷가게 앞에서 쇼윈도를 보며 의견을 교환하거나, 천천히 거리를 걷는 그 모습들은 누구나가 즐기는 휴일 오후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이 훨씬 많다.
 
종로헤어컬렉션 앞에는 의자가 몇 개 나와 있었다. 그 의자에는 베트남 청년들이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후의 햇볕과 가을바람을 느끼며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를 보더니 대번에 V자 표시를 하며 환하게 웃는다. 베트남 청년 웬디탕(27) 씨와 친구들은 이 미장원의 단골고객이다.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내 마음에 꼭 들게 머리를 잘라줘서 친구들 하고 자주 옵니다." 한국말도 잘한다.

웃음으로 반기며 대하다보니 말 안 통해도 마음으로 교감
외국인 손님들 "편안해" 입소문 주말·휴일엔 빈자리 없을 정도

▲ 캄보디아 청년 망스췐 씨와 전규남 디자이너가 헤어스타일을 의논하고 있다.
미장원 안은 외국인들과 시민들로 빈 자리가 없다. 지난 수요일 찾아갔을 때, 휴일에 오면 외국인들이 머리 자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고 귀띔해 주던 배명자(51) 원장은 바쁜 가운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헤어스타일북을 뒤적이던 망스췐(캄보디아·22) 씨가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전규남 디자디어가 망스췐 씨와 의논을 한다. "앞머리는 그대로 두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잘라주세요"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망스췐 씨. 거울 속의 망스췐 씨를 바라보며 얼굴과 현재 헤어스타일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전규남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라고 답한다. 이제 망스췐 씨는 편안하게 자신의 머리를 맡기기만 하면 된다. 앉아 있는 자세가 처음보다는 더 편해 보인다.
 
또 다른 베트남 청년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던 심상희 디자이너는 머리를 자르는 동안 계속 말을 건다. 청년은 한국말이 서투르지만, 머리카락을 만지며 "앞머리는 이 정도 길이면 되겠죠?"라고 손짓과 눈빛으로 말하는 디자이너의 마음 정도는 충분히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난 뒤 "샴푸하고 오면 다시 봐 드릴께요"라는 심상희 씨 말에서 '샴푸'라는 단어만 듣고도 일어나 샴푸대 쪽으로 걸어갔다.
 
말끔하게 정리된 모습의 베트남 청년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일반 컷은 1만원이지만, 종로헤어컬렉션은 외국인에게 할인가격 8천원을 받고 있다. 황선숙 매니저는 계산하랴, 새로 온 고객에게 좌석과 디자이너를 배정하랴, 숍 내부 정리하랴, 거기에다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차 대접까지 하랴 정신없이 바쁘다.

 미장원 앞에 의자 내놓고 "지나가는 길에 쉬다 가세요"
 눈인사에 커피 한 잔 건네면 "친절하고 맘에 들어 단골 됐죠" 

▲ 종로헤어컬렉션에서 마련한 거리의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베트남 청년 웬디탕 씨와 친구들.
종로헤어컬렉션은 다문화도시 김해에서도 외국인이 가장 많이 붐비는 거리에 있다. 배명자 원장은 김해에서 22년째 미장원을 경영하며 외국인 근로자들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 와서 일하는 그들의 머리를 잘라 주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미장원 앞에 의자도 내놓았다. 머리를 자르러 들어오지 않아도, 지나는 길에 쉬어 가라는 배려다. 눈이 마주치면 늘 먼저 웃음으로 인사를 보내고, 커피도 한 잔씩 건네준다. 배 원장뿐만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 역시 마찬가지 마음이다.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 이 곳은 외국인들이 가장 편하게 머리를 자르러 오는 미장원이 되었다.
 
헤어스타일도 유행이 있고, 또 태어나 자란 자국 특유의 문화적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외국인들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중국의 경우 여자들은 웨이브 컬이 들어간 스타일을, 남자들은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인도네시아는 내추럴한 스트레이트, 베트남 여성은 긴 머리의 스트레이트를 좋아한다. 자기 스타일에 대해 뚜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다.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디자인을 설정해 오고, 스타일북에서도 원하는 헤어디자인을 못 찾으면 아예 그림을 그려오는 경우도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원하는 스타일을 맞춰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한국말이 서툴러도 소통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요.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했을 때, 외면하는 외국인도 없구요"라고 배 원장은 말한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며 무섭다고 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선입견을 버릴 것을 부탁한다. "제가 이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모두 순수하고 착해요. 먼 나라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서 고국에 있는 자기 가족을 돌보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다고 외면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이죠."
 
낯선 나라의 미장원에서 자신의 인상을 결정지을 중요한 헤어스타일을 맡기는 외국인은 처음에는 불안한 자세다. 그러나 머리를 만지는 동안 디자이너의 마음이 담긴 미소와 몸짓으로 충분히 소통이 되는 동안 어느새 편안하게 자신을 내맡긴다. 그리고 머리손질이 끝나고 나서 그들이 서툰 발음으로 말해주는 "좋아 좋아! 최고 최고!"라는 한마디는 인간 대 인간이 서로 감응하는 최고의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낯설고 물선 나라의 사람이 다듬어 준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배 원장과 디자이너 모두의 기쁨이다.
 
종로헤어컬렉션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황인숙 매니저를 비롯해 기본 10년 이상씩 일을 해온 장기 근속 직원들이다. 이희정, 권양희, 정금주, 심상희, 전규남 씨는 모두 수석 헤어디자이너들이다. 어느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기더라도 안심할 수 있다며 배 원장은 직원들을 자랑한다.
 
배 원장은 김해 지역의 미용사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노인들을 위한 이미용 자원봉사도 하고, 가게도 운영하고, 가정살림도 알뜰하게 꾸려가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실력을 쌓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는 분들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배 원장은 거리 밖을 오가는 외국인들과 눈이 마주치면 연신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면 먼저 미소를 보낸다. 그 웃음이, 따뜻한 마음이 김해의 외국인들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때로는 누나처럼, 언니처럼 대하는 그 마음이 사람들이 편하게 자신을 맡길 수 있게 하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 Tip 22년 베테랑 배명자 원장 

배명자 원장은 대한미용사회 김해시지부장을 맡고 있다. 김해에서 미장원을 개업해 22년 동안 일해 왔고, 현재 종로헤어컬렉션 서상동 본점, 내동2호점, 내동3호점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미용 최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후 국가기술 감독 위원을 지내는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현재 마산대학 뷰티케어학부 겸임교수이다. 김해지역 미용사들은 타 지역보다 많은 교육을 받고 있고, 모임을 통한 봉사활동도 한다.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도 크다. 배 원장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고, 마음이 예뻐야 그 마음이 얼굴에 미소로 나타나고, 그 아름다움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한다고 믿는다. 종로헤어컬렉션을 찾는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만드는 법을 자신도 모르게 배우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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