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지역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이 통카페에서 만났다. 유학생, 성직자, 노동자, 자영업자 등 하는 일은 다르지만 이야기는 시종 따뜻하다.


 

이주민들 자투리 땅에 모국 작물 농사 지어
동상동 재래시장은 없는 게 없는 국제시장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 피난처 없어 아쉬워
임금 못 받는 경우 여전… 업주 인식 바꿔야

회사 그만두면 의료보험 적용 안 돼 불안
한국에 이주민 역사 30년, 한가족 되어야



 
김해시 서상동 다문화거리에 있는 통카페에서 방글라데시 이주민들이 지난 주 자리를 함께 했다. 이주여성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사회적기업인 통카페는 여느 커피숍보다 화사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다. 테이블마다 꽃들이 놓이고, 빈 공간은 초록 화분들이 메우고 있다.
 
한국에서 하는 일도, 살아 온 기간도 각각 다른 오늘 참석자들은 모처럼의 만남이 반가워 커피 한 잔을 놓고 서로 안부 묻기에 바쁘다.
 
미야(30)와 까이살(24)은 인제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유학생들이다. 까이살은 영국에서 4년간 공부했는데, 그 곳의 장학금 제도가 빈약해 수소문 끝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 1년, 한국어 수업은 따라잡겠는데 정작 어려운 건 아르바이트 구하기이다. 파트타임으로 생활비는 벌어서 쓰고 싶은데 일자리가 여의치 않다는 게다.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온 학생들은 학교 근처의 음식점이나 모텔 같은데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요. 그런데 우리처럼 얼굴색이 좀 검은 학생은 주인이 안 쓰려고 해요."
 
까이살은 영국에서 공부할 때는 맥도날드에서 큰 불편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 커피숍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국에서 13년 살아온 라집(42)이 한마디 거든다. "다른 곳은 몰라도 김해에는 이주민들이 많잖아요. 이들이 생산도 담당하고 소비도 해서 지역에 도움이 돼요. 그러면 대형마트 같은 곳은 이들을 고용할 만한데 대부분 꺼려요. 택시나 화물차 기사 같은 것도 잘 할 수 있는데, 업체에서 아예 받아주질 않죠."

▲ 친선 크리켓 경기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부산·경남지역 이주민들.

차별 이야기가 나오자 김해 이슬람사원의 이맘(성직자)인 압둘롭이 자기 경험을 이야기 했다. 한국의 사원에서 일한 지 1년 반 정도 되는데, 비자가 3개월짜리여서 일 년에도 몇 번이나 방글라데시를 들락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해 좀 엄격한 유럽도 그렇지 않은데, 유독 한국에서는 비자가 짧아요. 그게 출신 나라 탓인 지, 종교 탓인 지."
 
그나마 김해에는 동상동 재래시장 주변에 외국인거리가 조성돼 생활하기가 나은 편이다. 주말이면 지인들도 만나고, 또 일주일 먹을 부식과 생활용품 쇼핑도 할 수 있다.
 
"이제 동상동 재래시장은 국제적인 시장이 됐어요. 나라 별로 진귀한 농산물이 다 있죠. 구할 수 없는 게 없어요." 한국에서 산 지 22년째인 사골(44)의 설명이다. 이주민들이 자투리땅에다 틈틈이 농사 지어 시장에 내어놓는 채소들이 많단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여기서 여주를 많이 키워요. 한국에서는 당뇨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죠. 그리고 뿌삭과 레도시 같은 전통 작물들도 시장에 많이 나와요."
 
그런 다문화거리이지만 이주민들이 마음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쉼터가 제대로 없는 게 늘 아쉽다. "주말이면 모두 이 곳에 모여들지만 친구들과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거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요. 부담 없이 지낼 수 있는 장소가 없거든요. 이주민 지원센터 같은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저녁이면 문을 닫아요. 편하게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또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는다든지 해서 숙소가 없는 경우 잠자고 밥 해먹을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 ‘승리의 날’ 기념일에 가두행진하는 방글라데시 이주민들.

이맘(30·성직자가 아니라 이름)의 경우가 그렇다. 일 하던 열처리 공장이 문을 닫아 회사를 나와야 했다. 밀린 임금 550만 원을 받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당장 숙식이 해결 안 돼 이슬람 사원에 신세를 지고 있다.
 
"회사가 어렵다며 문을 닫아 임금도 못 받고 방글라데시에 가서 두 달 쉬고 왔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그 회사가 다시 문을 열고 일을 하더라구요. 그 뒤 지역 노동청에서 상담할 때는 사장이 밀린 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은 전화도 안 받아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회사나 본인 사정으로 회사를 옮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 숙식도 문제지만 의료보험이 적용 안 돼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그래도 이전의 산업연수생 시절과 비교할 때 지금은 여건이 좀 나아진 편이다. 사골의 옛 기억이 그렇다. 지하철을 탔는데 엄마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저 사람은 얼굴이 왜 저렇게 검어?"라고 엄마에게 물었단다. "엄마가 자주 안 씻어서 그래 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렇게 밖에 설명을 못 하는 지… 하기야 그때는 버스에 타면 옆 자리에 아무도 안 앉으려 했어요." 지금은 당시에 비해 정도가 덜하지만, 그렇다고 이주민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은 모르는 사람,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아는 사람, 세 번째 만난 사람은 친구, 그리고 자주 만나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속담이 있어요. 산업연수생 제도가 시행 되면서 한국에 이주민들이 들어온 게 30여 년 정도 됐으니 이제 가족이라 불러도 될 만한 상황이 아니겠어요?" 사골의 물음이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