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읍성의 치(雉). 기단 위 성벽부분은 파괴됐지만 기단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다.



 철거지서 청동기 유적 대거 발굴
 김해읍성 기단석도 처음 확인
“금관가야 이전 사회 중요자료”


 
김해 구도심 주택가에서 청동기~조선시대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김해시는 김해읍성 북문지 인근의 대성동과 동상동에서 각각 청동기시대 고인돌 여러 기와 조선시대 읍성의 치(雉) 등이 나왔다고 지난 2일 밝혔다. 두 유적은 모두 도심지 내 기존 노후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단독주택을 세우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대성동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은 아직 조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재)강산문화연구원은 지난달 12일부터 발굴을 시작해 묘역이 있는 고인돌 6기, 돌널무덤 1기, 김해읍성의 해자 등을 찾아냈다. 해자는 방어시설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물웅덩이다.
 
고인돌 내부에서는 간돌칼과 간화살촉, 붉은 간토기 등이 출토됐다. 금관가야의 이전사회인 구간사회(기원전 4~5세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 대성동 주택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 전경. 간돌칼, 붉은 간토기 등이 출토됐다.

동상동 유적의 발굴은 (재)해동문화재연구원이 진행했다. 현재는 작업이 완료된 상태이다. 여기서 나온 조선시대 읍성의 치는 성곽시설 중의 일부로 네모나게 돌출돼 있다. 성벽을 타고 올라오는 적들을 공격할 수 있게 설치된 시설물이다.
 
치성의 기단석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해읍성의 치성은 김해부내지도 등 옛 지도에 기록돼 있어 그 존재는 이미 알려진 상태였지만 발견된 적이 없었다. 1910년부터 일제의 읍성 철거정책이 시작되면서 김해읍성도 파괴됐기 때문이다.
 
조사결과 남아 있는 치성의 기단석은 2~4단이며 평면형태는 정사각형이다. 기단석은 허튼층쌓기로 조성했으며 앞으로 튀어나온 두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돼 있다. 기단 위 성벽은 파괴됐지만, 기단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김해읍성의 연구·복원·정비사업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읍성의 치 유적을 보존한 채로 복토를 하고 건물을 짓기로 했다. 주민들의 재산권 문제를 고려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 것이다.
 
김해시 관계자는 "대개 박물관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유물이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터에서 발견됐다. 김해가 오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닌 곳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도시재생 과정에서 비슷한 경우가 더 나올 것이다. 개발과 보존에 대한 이야기가 공론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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