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미감으로 고차적 기쁨 주고
인생의 진실과 인품을 높이는 위대한 작품

눈물 같고 웃음 같은 우리들 삶에 빛을 주는 책 한 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이랴.
 
에반젤린이 겪은 서럽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서사시가 가져다 준 감동과 여운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랑의 숭고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갖게 한다. 이 작품의 서정성과 리듬감은 내 마음 속에 선율이 되어 흐른다. 행복은 물론 고통과 슬픈 일을 당할 때도 그 선율이 있어 견뎌내기에 훨씬 수월했다.
 
주로 에세이, 즉 산문을 써온 나의 글을 읽어본 저명한 문인이 글 전반에 강한 리듬(내재율)이 흐르고 있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아무튼 에반젤린으로 하여 내 세포 속엔 리듬감이 배어들고 조금은 더 행복했다고 여겨진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W.Longfellow, 1807~1882, 미국의 시인)는 그의 최고 걸작 '에반젤린(Evangeline)'의 서시에서 "이곳은 태고의 원시림. 소슬대는 소나무와 독당근나무들이 푸른 이끼에 싸여 황혼녘에 아련하게 서 있다. 마치 슬픈 예언자의 목소리를 지닌 옛 드루이드의 성자(聖者)처럼, 가슴까지 턱수염 나풀거리는 은발의 하프 연주자처럼. 바위 동굴에서 들려오는 바다의 드높고 장중한 소리는 이 태고의 원시림이 구슬픈 음조로 울부짖는 비명에 화답하는 듯하다."라고 썼다.
 
이 작품의 탄생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롱펠로가 친구인 나다니엘 호손('주홍글씨'의 저자)과 함께 보스톤의 가톨릭 교구장 코노리 주교를 초대하여 만찬을 가졌다. 교구장은 영국과 프랑스가 영토분쟁으로 싸울 때, 캐나다의 아카디아(지금의 노바스코샤)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이 쫓겨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져 슬픈 사랑의 애사를 남긴 일이 있는데, 소설로 써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호손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롱펠로는 시적 영감을 얻어 '만약 자네가 쓰지 않겠다면 내가 쓰겠네'라고 말했고, 호손은 쾌히 승낙하였다. 인류의 비극에 관해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가졌던 롱펠로는 관계되는 역사 연구와 함께 수년의 각고 끝에 '에반젤린'을 완성하여 갈채를 받았다. 호손은 '인생의 참된 그림'이라고 축사를 보내왔다. '에반젤린'은 낭만주의 시대 영미문학의 금자탑으로, 영미권과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최고의 독차층을 가졌다.
 
헤어져 살면서 일생을 두고 찾았던 두 주인공의 노력은 너무나 늦게 이루어진다. 젊은 날의 두 연인, 에반젤린이 가브리엘을 찾았을 때는 백발이 되었고 임종 직전이었다. 그들이 겪은 지긋지긋하고 뿌리 깊던 번민, 괴롭던 인내, 모든 것은 끝났다. 그녀는 다시 가브리엘의 싸늘한 머리를 안아 보고 공손히 절을 하며 중얼거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감사하나이다!"
 
롱펠로는 문학예술의 궁극적 기능인 정서적 미감으로 고차적 기쁨을 주면서 인생의 진실과 인품을 높이는 위대한 작품으로 인류에 기여했다. '에반젤린'은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비춰주고 있어 마음의 정화와 풍요를 갖게 한다.
 


>> 박경용은
김해 출생. 김해문인협회 고문, 가인소극장 대표, 벨라에세이 연구회장을 맡아 김해의 문화와 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으로 에세이스트이다. 경남 예술인상과 김해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수필집 '구지봉에 올라서', 동물우화소설 '푸른 깃털 속의 사랑', 가야전설을 담은 '아! 가야'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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