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훈 마르떼 대표

점선으로 되어있는 이쁜 곡선들이 나선 모양으로 돌더니 불규칙적으로 좁혀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다 다시금 지나왔던 중앙을 가로질러 끝을 살짝 올리며 마무리된다. 
 
그렇게 무수히 똑같은 점선들을 채워나가기를 반복, 또 반복 하다보면 이제는 점선들이 사라지고 다섯 개의 실선위에 점선의 흔적을 찾아보며 기억을 되짚어 똑같이 그리다 보면 어느새 높은음자리표는 내것이 된다. 
 
그렇게 익히게 된 '높은음자리표(G clef, treble clef)'는 현재 사음자리표라는 명칭과 함께 쓰여지고 있으며 높은 성부의 음역대가 사용하게 되는 음의 자리를 표시할 뿐 아니라 시작하는 G(사, 솔)을 뜻하기도 한다. 기능적인 면을 바라봤을 때는 높은음자리표 보다는 '사음자리표'가 명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높은음자리표라고 계속해서 쓰고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높은음자리표는 교육적인 기능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사음자리표'에 손을 들어왔었지만 높은음자리표를 고수하기로 다짐했다. 이유인즉, 한글을 유난히도 아껴 많은 음악용어들을 순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신 그분, 그네의 '세모시 옥색치마'의 아름다운 선율을 작곡한 故 금수현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부터다.   
 
2019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금수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국가 시범도시로 선정된 부산시 강서구 에코델타시티 내에 금수현 기념관과 기념공원 유치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벌써부터 '금수현기념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5월이면 부산시청에서 인문포럼이 예정되어있다. 그렇게 부산에서는 금수현선생을 기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움직이고 있다. 
 
금수현은 김해군 대저면 사덕마을서 태어나 대저보통학교 때 음악스승 만나 지금의 일본 도쿄음악대학에서 수학한 음악가이자, 음악교육자, 그리고 음악기획자였다. 하지만 대저면이 1978년 당시 부산직할시에 편입이 되면서 현재는 부산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금수현은 부산의 금수현인가, 김해의 금수현인가. 
 
현재 김해에 오래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교가는 거의 대부분이 금수현선생이 작곡한 것이다. 소중한 음악적 흔적들이 김해지역 전반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금수현에 대한 지리적 경계가 나은 한계(?)로 인해 우리 김해지역의 학생들은 그러한 귀중한 문화적 자산을 알지 못한채 지나쳐 오고 있다.
 
김해는 가야의 왕도이다. 수로왕릉을 비롯한 가야역사테마파크 등 역사문화콘텐츠가 다른지역이 부러워 할 만큼 매우 풍성하다. 이는 자랑스러워 할만하다. 하지만 김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자산 또한 분명히 있다.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땐 그 무게 때문에 금수현선생과 같은 소중한 흔적들이 가려져 홀연히 부산만의 금수현이 되어버리는 아쉬움이 남을때도 많다.
 
누구의 문화적자산인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 김해는 가만히 있는가이다. 김해시청 홈페이지에도 금수현은 김해인물로 등재가 되어있다. 어쩔수 없이 바뀌어버린 지리적 경계로 인하여 많은 예산을 들여 준비하고 있는 부산 강서구의 움직임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산의 준비에 뒷짐지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다. 금수현은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근대 음악교육가이자, 음악가였다. 
 
우리 모두의 역사적·문화적자산인 금수현기념공원이 부산에서 추진되는 모습에 비록 지역이 틀리지만 우리 또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응원해야 할 것은 마땅하다. 가능하다면 김해에서도 관심을 가져 금수현선생을 두 도시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준비하여 2019년 100주년 행사를 다 같이 추모하고 축하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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