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할아버지집 전경. 처마와 외벽을 대나무로 마감해 스타일리시한 한옥이 됐다. 사진제공=건축사진작가 윤준환




현대적 재료와 공간으로 전통 건축 재현
박공지붕에 처마 살려 촌집의 형상
서까래와 외벽 모던하게 대나무로 마감
취미실은 가변적 공간, 다양한 활동 가능




꽃 피고 새 우는 숲속에서의 삶. 전원주택은 도시인의 로망이다. 시계의 초침을 따라가며 정해진 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는 도시인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저 푸른 초원'을 묻어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원주택 붐이 일어난 게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시기와 맞물린 건 그런 이유가 있었다. '산업 역군'이라 불리며 젊은 날을 온통 일터에 바쳤던 그들이 이제 자연의 순리 속에서 쉬고 싶은 것이다.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에 지어진 '멋진 할아버지집'은 베이비부머의 바람이 실현된 현대식 촌집의 하나다. 건축주는 부산의 금융계에서 평생 '치열하게' 살아왔다. 은퇴한 뒤 남은 삶은 자기 방식대로 살고자 했다. 풍광이 좋은 한적한 곳에서 어릴 때 살던 시골집의 푸근한 정서를 되찾고 싶었다. 여러군데 답사 끝에 부인의 고향인 김해를 선택했는데, 부인은 시골집보다는 편리한 현대식을 원했다. 
 
멋진 할아버지집은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아우를 지를 고민한 결과다. 전통건축의 요소들을 현대적인 재료와 공간으로 재현해냈다.
 

▲ 측면에서 바라본 주택. 안방 내부에서 아래층 서재로 연결된다.


이 집을 설계한 아키텍케이 이기철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빈곤의 시대에 태어나 경제개발 호황기를 거쳐 지금의 저성장시대를 살고 있는 다층적 경험의 소유자들"이라며 "서구화된 거주지에서 인생 대부분을 살다가 과거의 향수를 찾아 다시 시골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그들의 바람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 집의 본채는 일자형인데 전통적인 박공지붕에 처마를 두어 촌집의 형상을 살렸다. 지붕의 재료로는 기와를 단순화 시킨 골강판을 사용했고, 처마의 서까래는 통나무가 아닌 대나무를 써서 모던한 미감을 연출했다. 촌집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툇마루.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테라스와 회랑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흙벽에 해당되는 외벽은 노출콘크리트를 써서 깔끔하게 마감했다.
 
이 집의 구조는 본채 뒤에 정원과 함께 명상실이라는 별채가 있고, 본채 안방의 아래에는 서재와 게스트룸 등으로 쓸 수 있는 다목적 공간과 그 공간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데크가 있다. 
 
본채 중 재미있는 공간이 가장 왼쪽에 있는 취미실이다. 건축주는 중년에 접어들자 은퇴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 지 오랫동안 숙고를 했다. 그리고 행동에 옮겨 은퇴 후 향유할 여러 가지 취미를 배우기 시작했다. 

▲ ‘집 속의 집’으로 구성된 주방.

취미실은 방 안에 미닫이로 된 칸막이가 가로, 세로로 설치돼 있다. 이는 취미의 종류에 따라 그에 맞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국선도를 할 때, 음악을 들을 때나 서예를 할 때 미닫이를 선택적으로 열고 닫아 '사방이 닫힌' 또는 '창을 바라보는' 공간 등을 만들 수 있다.      
 
안주인의 공간인 주방은 현대적으로 꾸몄다. 건물 안에 별도의 건물을 만들어 넣었다. 그러니까 원래 건물 벽과 주방 건물 사이에 복도가 생기는 것이다. 건물 내부는 천정에 박공지붕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데다 벽면은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해 스타일리시한 분위기가 난다.   
 
뒤뜰에 있는 명상실은 이 부지가 밭일 때 현장에 있던 컨테이너를 활용했다. 잘 손질해 탄화 대나무로 마감하니 매력적인 별채가 되었다.   

▲ 서까래와 외벽의 탄화대나무.

이 집의 특징 중 하나가 대나무를 주된 건축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김해는 담양 못지않은 대나무 산지인데, 삼국시대에는 대나무로 만든 정자(죽루)가 있었다고 한다. 지역의 산물인 대나무를 건축 재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대나무의 색감과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해 탄화시키기로 했다. 전문 업체를 찾아가 수차례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짙은 커피색의 윤기 나는 탄화 대나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대나무는 서까래 뿐 아니라 이 집 전면의 외벽을 깔끔하게 치장하고 있다. 
 
이 집은 뒤의 무척산을 배경으로 앞쪽의 금동산을 바라보는 열린 시각축을 가지고 있다. 그 한 모서리에는 낙동강도 살짝 들어선다. 주변의 산세에 거스르지 않게 집을 지었던 전통 건축 양식대로 낮고 편안하게 집을 앉혔다. 본채의 취미실 옆에는 앞마당과 뒷마당을 연결하는 뚫린 공간이 있다. 주변 풍광이 이 열린 공간을 통해 집으로 스며든다.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소통의 공간인 것이다. 건물 전면과 후면의 창을 같은 위치에 배치한 것도 주변의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장치의 하나다. 
 
무척산 자락의 멋진 할아버지집은 힘들지만 멋진 인생을 살아 온 한 베이비부머의 은퇴 후 멋진 안식을 위해 이렇게 지어졌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멋진 할아버지집
건축면적 164㎡, 연면적 209㎡, 외장재 : 탄화 대나무·콘크리트 블럭·골강판
 



 건축 작가의 말  

▲ 이기철 아키텍케이 대표건축사

김해의 촌집, 멋진 할아버지집은 현대 건축을 배우고 첨단 디자인의 도시 뉴욕에서 일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주제였다. 마치 현대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한복을 디자인 하는 일이 주어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토속적인 건축과 베이비부머라는 역사적 현상은 작업을 진행할수록 익숙해졌으며 어렵기보다 신나는 작업이었다. 한국인이라는 나의 유전자 안에 이미 한국적인 정서와 이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완공 후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을 서구문명 앞에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우리의 건축을 다시 돌아보고 새롭게 잘 쓰는 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