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를 앞두고 이슬람 사원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인도네시아 이주민들. 동그랗게 모이면 한국 생활의 어려움도 잘 견딜 수 있다.


 

작업장 일상화된 욕설 가슴 아파
하루 5번 예배·할랄음식 구심점 역할
일부 회사 예배소 둬 이주자 배려

돌 앞둔 아이 영상 통화로 안아 보기
K-pop, 한류드라마 고국서 인기 많아
일본 강점기 아픈 역사 두 나라 공유



일요일인 지난 1일 날이 저물자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이슬람사원 알 바로카에 인도네시아 이주민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주말 저녁에는 합동예배가 열린다.
 
머리에 동그란 페즈 모자를 쓰고 통치마인 룽기를 입은 청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이미 와 있는 사람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인사를 건넨 그들은 곧장 욕실에 가서 얼굴과 손 발을 씻고서 예배소에 가서 먼저 기도를 올렸다.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90% 정도가 이슬람교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주민들 중에서 동질감이 남달라 보인다. 하루 5번 치르는 예배와 할랄음식 같은 독특한 종교문화가 이들을 하나로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한국에서도 어떤 회사에는 숙소에 따로 예배소를 두기도 해요. 예배 시간도 배려를 해주는 편이죠. 회사에 입사할 때 기도시간을 주는 지를 가장 먼저 따지니까요." 한국에 온 지 4년 된 이주노동자 묵신(33)의 말이다. 기도 시간은 절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12시나 오후 3, 4시 즈음에 있는 낮 기도는 점심 시간과 오후 간식 시간 등을 활용하는 편이다. 저녁 기도는 퇴근 후에 할 수 있어 부담이 덜하다. 
 

▲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주말에는 이곳 사원에 와서 예배도 보고 모인 사람들과 시시콜콜 주변 이야기들을 나눈다. 간혹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주민들은 이곳에서 잠도 자고 음식도 해먹는다.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에게는 훌륭한 커뮤니티 공간이자 쉼터이고 또 피난처다.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게 음식이었어요. 한국사람 돼지고기 많이 먹어요. 그래서 한국 음식은 같이먹기가 힘들어요." 이슬람 율법에서 돼지고기는 금기다. 또 소고기나 닭고기 등도 율법에 따라 처리한 할랄음식만 먹어야 한다.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은 숙소에서 할랄음식으로 직접 요리해 먹는다. 할랄음식 자가조달을 위해 일터나 숙소 주변에 닭을 키우는 이주노동자도 있단다. 
 
오랜 기간 생활하며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적인 여건이 중요하다. 지금 이주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힘들어하는 건 문화적인 차이보다는 비인격적인 대우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아직도 이주노동자을 비하하는 욕설들을 일상어처럼 쓰고 있다고 한다. "일은 힘들어도 괜찮아요. 허리 아파도 괜찮아요. 그런데 나쁜 말은 안돼요. 가슴이 아파요." 9년째 한국에서 일 하고 있는 수하이디(28)의 하소연이다. 사장은 물론이고 부장이나 반장 등의 한국인 직원들이 이주노동자에게 하는 막말과 욕설들이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고 한다.
 
가르마트(37)는 '빨리빨리' 문화가 아직 적응이 안 된다. 한국에서 9년, 제법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말을 들으면 자신이 무능한 것 같아 기분이 얹짢다. "인도네시아에도 빨리 하라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빨리빨리와는 달라요. 들으면 기분이 안좋아요."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견디는 것은 한국에 오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시험을 치루는 등 남들이 부러워하는 관문을 거쳤기 때문이다. 자신 한 몸이 고생해서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게 유일한 보람이다.
 

가르마트의 고향에서는 쌀과 수박 농사를 짓는다. 인도네시아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25~27도인 열대지역이어서 쌀농사는 일 년에 두 번, 또는 세 번까지 짓는다고 한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 2년 전 휴가를 다녀왔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한 달 뒤에는 돌이다. 마음이야 달려가서 매일 안아주고 업어주고 싶지만 대신 영상통화로 그리움을 달랜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농약이나 잡화 등을 파는 가게를 꾸리고 싶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세우는 희망의 목표다. 한국에서 일한 지 7년 된 이완(32)은 그동안 고향에 세 번 다녀왔다. 결혼한 지 3년째, 하지만 신혼의 단꿈을 꾸어야 할 시기에 서로 떨어져 사는 기러기 부부 신세다. 전통의상인 히잡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부인은 그가 귀국하는 날만 손꼽고 있다.
 
좀 늦은 나이에 한국에 온 훈다라(48)는 대학생 쌍둥이 딸과 중학생 아들이 고향에 있다. "딸들이 선생님과 미용사가 되고 싶어 해요. 이 아이들이 꿈을 이룰 때까지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죠"라며 씨익 웃는다.
 
고향에서는 한국이 인기다. 어른이나 아이나 K-POP과 한류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이 한국에 많이 오고 싶어 해요. 백지영, 티아라 인기 많아요. 한국드라마 덕분에 인도네시아에서도 로맨스가 해방적이 됐어요." 묵신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같은 점이 많아요. 한국은 8월 15일, 인도네시아는 8월 17일 모두 일본으로부터 독립했어요." 잠자코 있던 윈도(39)가 역사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 사람과 피부색과 종교, 그리고 언어는 다르지만 그래도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다. 인도네시아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네덜란드가 식민지로 지배했었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네덜란드 연방으로 남았다. 2차 세계대전 때는 한국처럼 일본의 강점기를 겪었다.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다.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은 더 친밀해질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그런 실마리를 한국의 사장들이, 부장과 팀장이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  
 
이윽고 사원 내에 하나님을 부르는 외침인 '아잔'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기도 시간이 되었다. 넓은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주민들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예배소 안으로 들어섰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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