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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전 김해 장유 독립만세운동 재조명
  • 수정 2018.04.18 10:33
  • 게재 2018.04.18 09:58
  • 호수 369
  • 18면
  • 조나리 기자(nari@gimhaenews.co.kr)
▲ 지난 12일 장유1동 복지센터에서 장유 독립만세운동 99주년 학술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삼일동지회 김해지부

 
12일 장유1동 주민센터 개최
운동 배경·<김승태가> 연구 등



김해 장유 독립만세운동 99주년 학술발표회가 지난 12일 장유1동 주민복지센터 2층 강당에서 개최됐다. 삼일동지회 김해지부가 주최하고 삼일동지회 김해지부와 장유청년회의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행사는 1919년 4월 12일 장유에서 열렸던 독립만세운동의 배경과 과정, 장유 독립운동가의 어머니가 지은 가사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열렸다.

김해시의원이자 삼일동지회 김해지부장인 이광희 지부장은 '4·12 장유기미독립의거의 전말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발표했다. 이 지부장은 "1919년 기미년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해 김해군에서는 3월 30일 배동석 등이 김해면에서 벌인 시위가 최초였다"며 이를 계기로 (3월 31일 하계민 진영리, 4월 2일 김해면, 4월 3·5일 진영리, 10일 명지면 중리, 11일 명지면 진목리, 12일 장유 무계리, 13일 하계면 진영리·가락면 봉림리, 16일 김해면 이동리 등 총 )김해군 내 10회 7개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일제 검찰기록 등을 참조한 연구에 따르면 장유 독립만세운동은 유하리 출신인 김종훤이 서울 3·1만세운동에 가담한 후 김해군으로 돌아와 지역 유지인 김승태와 모의하고 이강석, 김용주, 조용우, 조항래, 최현호 등 동지를 규합하며 이뤄졌다. 4월 12일 당일 대청천 일대에서 김승태, 김종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3000여 명의 군중이 무계시장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지역주민들과 유족들은 이들의 만세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7년 3·1운동기념탑 건립기성회를 설립해 내덕리 용두산에 기념탐을 건립하고 3월 1일에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또한 4월 12일을 '장유의 날'로 지정해 매년 주민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이 지부장은 "장유 4·12의거는 경남에서 일어난 9개 대규모 시위 중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홍숙 문학박사는 '장유의 독립운동가 김승태 어머니 조순남 여사의 <김승태가>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독립만세운동의 당위성, 일본 순사의 잔인성, 독립만세운동 현장과 독립운동가 연행, 아들 김순태의 수감과 면회, 출감 환영식 등 독립운동가 김승태의 행보에 맞춰 진행되는 가사를 설명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어머니가 독립운동가 아들을 주인공으로 해 지은 가사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며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 <김승태가>가 지니는 존재의 희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유독립만세운동의 전모가 드러나 있다는 점과 1920년대 장유의 문화적 현실을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문화사적 의의가 크다고 덧붙였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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