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기후 변화·인종주의 등
트럼프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문명을 어떻게 악화시키는지 추적



'충격(Shock)'.
 
2016년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수없이 되풀이해 듣고 있는 단어이다. 여론조사 예측을 뒤엎는 선거결과를 표현할 때도, 트럼프의 당선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할 때도, 취임 이후 기습적인 정책 결정과 트위터로 정부 고위직의 '목을 날리는' 행태를 보일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됐다.
 
캐나다 출신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시민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의 시각은 좀 다르다. 그는 트럼프의 출현이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돼 온 위험한 조류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에서 클라인은 "나는 언젠가부터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핵무장 문제를 리얼리티 TV 쇼처럼 다루는 미국 대통령이 나타날 날이 틀림없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트럼프는 일탈적인 인물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최악의 동향들이 혼합되면서 만들어 낸 논리적인 결과물이다"고 진단한다. 책은 트럼프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부의 불평등, 기업 지배, 기후 변화, 인종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불러오고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클라인에 따르면 트럼프의 집권은 이제까지 워싱턴에서 일어나던 '집권여당의 교체'와는 의미가 다르다. 기업들이 노골적으로 권력 장악을 완결지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선거 경쟁에서 이긴 '싸움개들'에게 맡겼던 일을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있다"는 설명. 트럼프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 등 정권 실세들이 '국가의 해체'와 최대한 많은 국가기능을 영리 기업에 위탁하려는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내각의 핵심 포스트를 엑슨모빌과 골드만삭스, 제너럴다이내믹스 등 대기업 경영자 출신들이 차지한 것도 트럼프 정부의 기본 목표와 관련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클라인은 트럼프를 '개인 브랜드(Brand)'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딴 부동산개발 업체를 운영해 오늘에 이르렀다. 물건의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한 상품 대신에 '어떤 문화집단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에 높은 프리미엄 가격을 얹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모든 건물에 제 이름을 박는가 하면 사무용 고층 빌딩과 아파트, 골프 클럽을 하나로 엮어 명품 프랜차이즈로 선전했다.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계기가 된 리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를 통해서도 '트럼프=성공의 대명사'를 부각시켰다. 클라인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며 "대통령직은 사실상 트럼프 브랜드 확장의 최고봉"으로 규정한다. 실제 트럼프는 취임 후에도 플로리다에 있는 개인 별장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각국 정상들을 불러들여 리조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책은 트럼프의 정치적·경제적 프로젝트에서 중심축을 '국가 규제의 해체'와 '복지국가와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기후과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화석 연료 열풍의 조작'으로 진단한다. 이민자들과 '급진적인 이슬람 테러리즘'을 겨냥한 '문명 전쟁'도 더해진다. 클라인은 이러한 프로젝트가 "이미 가장 심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을 넘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연쇄적인 위기와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데 동원될 수 있는 강력한 논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책은 트럼프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충격 저항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럼프가 천박하고 어이없을 만큼 무지한 인간이라고 피상적으로 비난하거나 그의 정책에 단순히 '노(No)'라고 반대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항을 위해서는 우선 충격을 이용하는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이 장치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클라인은 그 경로에 대해 "인종적 분할과 민족적 차이, 종교와 성별 차이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들을 넘어서는 통합의 활동을, 그리고 불안정을 가속화하는 전쟁과 오염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치유하는 활동을 포괄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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