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인들이 모처럼 나들이를 했다.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열린 이주민체육대회에 참가한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구소련지역 고려인들 일자리 찾아 한국에
가족 구성원 각각 비자 달라 늘 체류 걱정
비자 만료되면 아이들 교육 어떡하나 한숨

한국어 서툰 3·4세대 사회 적응도 어려워
낡은 단체 사무실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
역사에 희생, 안정된 고국생활은 언제쯤



그들은 부모님의 땅, 고국에 왔다. 하지만 이주민으로 살아간다. 돌아가야 할 시한이 정해져 있고, 모국어를 새로 배워야 하며, 선주민(한국인)들은 자신들을 외국인으로 대한다. H2, F4, F1, C3-1…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가 제각기 다른 비자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비자 넘버에 따라 거주 기한과 거주 조건이 달라진다. 매일이 불안정한 하루하루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과, 김치와 된장찌개의 맛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고려인들이다. 
 
김해시 동상동 이면도로의 한 건물 3층에 자리잡은 '구소련 친구들'사무실에는 고려인들이 모인다. 여느 이주민 사무실들처럼 낡고 좁지만 오며 가며 들러서 서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대부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같은 구소련 지역에서 거주하다 일거리를 찾아 고국에 왔다. 일요일인 지난 15일 오후 한글수업을 마친 고려인 2세와 3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4세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지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될 때 가져온 곡식 씨앗으로 겨우 연명하고 살았어요. 부모님은 결국 고국에 못 돌아오고 저와 아이들만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똑같은 고려인인데 왜 우리는 60세를 넘겨야 F4(재외동포)비자를 받을 수 있는 거죠?" 리안 아리나(65)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2세다. 15년 전 막내딸이 결혼이주 할 때 같이 한국에 들어왔다. 딸 넷 중 2명은 결혼이주, 2명은 방문취업(H2) 비자로 모두 한국에 살고 있다. 
 

▲ ‘구소련 친구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고려인 가족들.

그가 꺼낸 첫마디는 비자 문제다. 재외동포가 받는 비자 종류는 한국에서의 삶을 결정한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F4비자는 3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어 한국에서 계속 거주가 가능하다. 또 단순 노무 등을 제외한 업종에 자유로이 취업할 수 있다. 그런데 고려인이나 재중동포 그리고 재일조선인(조선적 보유자)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전에 해외로 이주해 부모나 조상들의 국적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 결국 그 후손들은 H2(방문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와 생활한 뒤 시험을 거쳐 F4비자로 갈아타야 한다. H2비자는 최대 4년 10개월까지만 체류가 가능하고 일자리도 특례고용허가를 받은 업체에만 취업을 할 수 있다.
 
고려인 3세인 발렌티나(35)는 H2비자로 입국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 남편(40)과 두 딸을 국내로 불렀으나 우즈베키스탄인인 남편이 받을 수 있는 비자는 취업이 금지되는 F1(방문동거)이다. "혼자 벌어서는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남편은 일을 못하니 집안 일만 거들죠. 생활이 힘들어서 결국 딸들을 할머니가 있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돌려 보냈어요." 발렌티나는 "남편에게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이렇게 가족이 생이별 하지는 않아도 될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고려인 3세인 최나자(47)씨는 네 명의 아이들 제각각 체류 기간이 달라 혼란스럽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은 F1비자여서 체류연장이 가능하지만 23살인 쌍둥이 아들은 18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3개월짜리 C3-1(단기방문)비자가 발급된다. "쌍둥이 아들들은 3개월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오가고 있어요." 곧 H2비자의 체류기간이 곧 만료되는 최씨는 어린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킬지 걱정이 태산이다. "비자가 만료되면 아이들만 놔두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데리고 들어가면 교육이 제대로 안될 것 같고…"
 
언어 소통의 어려움은 이들의 한국생활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고려인 2세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한국어를 익힐 기회가 있었으나 3세와 4세는 그렇지 못했다. 
 

▲ 고려인 3·4세들이 한글 수업을 받고 있다.

최나자 씨는 한국말이 서툴다. 그래서 불안하다. 다니는 회사에 일감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 한국말을 잘 못하면 다른 직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에 가면 입은 닫고 일만 하라고 그래요"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말이 잘 안 통하니 애가 아파도 병원에 쉬 갈 수도 없고 관공서에 갈 때면 한국말을 잘 하는 통역을 데리고 가야한다. 
 
고려인 3세인 뱍 베로니카(36)는 5년 전 초등생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국어가 꽤 능통한 편이다. "토요일마다 한글교실에 꾸준히 다녔어요. 그리고 회사에서도 한국인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해 한국말이 많이 늘었죠."라며 씩 웃는다.
 
리안 아리나 씨는 지금 무릎과 허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한다. "한국 와서 식당일 밖에 할 일이 없었어요. 억척으로 일하다 보니 무릎과 허리가 다 나가서 이제는 잘 걷지도 못해요." 식당에서 허드레 일을 했지만 주인이 한국 종업원과 자신을 은근 차별하는 것 같아 혼자 눈물짓는 시간도 많았다. 
 
고려인은 19세기에 러시아 연해주지역으로 이주해 살아온 우리민족이다. 일본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소련이 '일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1937년 이들을 집단으로 강제이주를 시켰다. 당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에 이송된 고려인은 18만 여명. 기차 화물칸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노약자 등 2만 여명이 숨졌다고 한다. 
 
'구소련 친구들'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황원선(52)총무는 "그들은 '같은 동포인데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오래 지낼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있나, 어떻게 하면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나 라는 현실적인 문제만도 생각하기 빠듯해서요"라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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