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마을 ‘헤이 온 와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리처드 부스의 서점’에서 한 방문객이 책을 읽고 있다.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인 이 서점에는 카페와 영화관이 마련돼 있어 방문객의 관심이 높다.


 

리처드 부스, 세계 최초 책마을 설립
괴짜 행동으로 언론 주목 받아

각지에서 헌책 수백만 권 사들여
주택, 창고, 고성 매입해 책방 개조

26개 서점, 각종 테마로 꾸며 눈길
연령·주제·작가별로 분류해 편리

헤이페스티벌, 글로벌 축제 발돋움
각종 편의시설로 관광객 만족 커




영국의 한 괴짜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책 마을이 있다. 바로 독특한 기획력으로 중무장한 영국 웨일스의 '헤이 온 와이'다. 영국 중심지인 런던 패딩턴 역에서 해리포드 역까지 기차로 3시간, 버스로 1시간을 가야하는 산골 마을이지만 연간 방문객만 50만 명을 기록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책방 마을의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괴짜의 엉뚱한 상상이 현실로…
1938년 영국 서섹스 주에서 태어난 리처드 부스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학생 시절 헌책에 매력을 느낀 그는 헌책방 주인을 늘 꿈꿔왔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엘리트코스를 밟은 부스는 영국 웨일스의 시골마을로 가 세계 최초의 헌책방 마을을 설립했다.
 
부스가 오기 전 까지 헤이온 와이는 쇠락해가는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 수는 약 1500여 명. 중세 때 세워진 고성 주위로 탄광촌이 형성됐으나 에너지 산업의 발전으로 석탄경기가 주춤해지면서 황폐해졌다. 보잘 것 없는 산골마을은 리처드의 손길로 변화됐다.
 

▲ 26개 헌책방이 줄지어 늘어선 책 마을 전경. 걸음마다 책방과 잡화점, 공예품 가게들이 위치해 있다.


우선 그는 1977년 4월 1일 만우절에 '헤이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헤이 온 와이를 독립국으로 선언해 스스로 책 마을의 왕이 됐다. 자신의 말은 헤이 온 와이의 총리로 임명하는 유머를 보이기도 했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정신 나간 녀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전국에 퍼져나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각종 방송사가 헤이 온 와이에 찾아와 책 마을을 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미국, 유럽 등 전세계의 헌책 수백만 권을 사들였다. 부스는 마을에 방치된 주택과 창고, 오래된 고성을 매입해 책방으로 개조했고 수집한 고서와 헌책을 팔기 시작했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없는 마을에 서점과 책마을이 생기자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손때 묻은 헌책들.

헤이 온 와이는 부스의 기발한 상상력과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뚝심이 더해져 유명해졌다. 무엇보다도 헤이 온 와이에 가면 희귀한 고서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방문객은 배로 늘어났다. 1998년 부스는 헤이 온 와이 독립 선포 21주년 기념일에서 전 세계의 책 마을을 총괄하는 '헌책방 제국의 황제'로 추대됐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헌책을 '작은 마을의 희망이 되는 물건'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골목 골목 스며든 헌책 향기
헤이 온 와이는 마치 중세시대에 온 듯한 고즈넉한 분위를 자아낸다. 바로 마을 중심부에 있는 옛 성곽 때문이다. 현재 수리 중인 헤이 성 서점은 100만 권이 넘는 헌책과 희귀서적으로 꾸며져있다. 성밖에는 서가가 있는데 바람과 햇빛을 쬐며 방문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곳곳에 무인서점도 즐비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가져가서 볼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돈을 지불해 책을 구입할 수도 있다.
 

▲ 마을 입구에 위치한 관광안내소 모습.

 

책마을 번성기 때는 40여 개의 헌책방이 있었지만 현재 마을에 있는 서점 수는 26개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에서 마을 지도와 안내책자를 받아 책방투어를 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을 관광객 리디아 윌슨 씨는 "헌책만의 향기가 좋다. 새책은 어디에서나 보고 만질 수 있지만 고서는 헤이 온 와이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다양한 헌책들이 눈을 사로잡는다"고 평가했다.
 
1982년에 문을 연 '리처드 부스의 서점'은 마을 내 최대 규모의 고서점이다.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마을 소방서를 재활용한 목재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에는 카페와 영화관까지 마련돼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삐걱대는 나무바닥 소리는 조용한 분위기의 서점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소리마저 즐긴다. 낡고 빛바랜 고서들은 일정한 분류대로 서가에 빽빽하게 꽂혀있다. 곳곳에는 의자도 비치돼 누구든 책을 읽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 탐정소설 전문서점 ‘살인과 대혼란’ 내부 전경.

탐정 추리소설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살인과 대혼란' 서점도 눈길을 끈다. 헤이 온 와이의 특색 있는 서점 중 하나로 서점에 발을 딛는 순간 범죄사건 현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책은 모두 탐정, 추리 소설이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헤이 시네마 북샵'은 마을 주민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시 낭독 모임과 워크샵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외에도 어린이 전문서점, 시집 서점, 무인서점 등 가지각색 독특한 콘셉트의 서점이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서점마다 연령, 주제, 가격, 작가별로 책이 분류돼 있어 찾아보기도 편리하다.


■관광객 이끄는 '헤이페스티벌'
헤이온와이의 대표 행사는 책축제 '헤이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31회를 맞은 페스티벌 행사 예정일은 5월 24일~6월 3일이다.
 
헤이 페스티벌은 문화기획자 노만과 피터 플로렌스가 아이디어를 낸 축제다. 처음에는 단순히 책 마을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웨일스를 넘어 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축제로 발돋움했다. 축제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2009년에는 영국여왕으로부터 공로 표창을 받았다. 매년 재즈축제와 함께하는 헤이 페스티벌은 전시와 음악행사, 영화상영, 토론 등으로 꾸며진다.
 

▲ 중세시대에 온 듯 독특한 건물양식이 눈에 띄는 옛 성곽. 현재 정비공사 중이지만 헤이 성 서점에는 100만 권이 넘는 헌책과 희귀 서적으로 꾸며져 있다.


마을주민들은 자원봉사자를 자처해 축제를 돕고 행사의 진행과 안내를 담당한다. 마을에는 관광객이 먹고 잘 수 있는 호텔과 식당, 펍, 카페 등이 있다. 대형 주차장도 완비돼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골동품가게와 잡화점, 약국, 의류가게까지 없는 게 없다. 관광객의 휴식장소가 마련돼 있어 체류시간도 길다.
 
관광안내원 조안나 씨는 "이곳에서 판매되는 책은 연간 100만 권에 달한다. 책 판매뿐만 아니라 문화공연과 책 모임, 영화상영, 강연 등이 이어져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서점 주인과 관광객들로 인해 헌책의 가치가 빛날 수 있다"고 미소 지었다.  

김해뉴스 /영국=배미진 기자 bmj@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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