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풍수란 무엇인가? 질문에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곁들여
쉽게 체계적으로 한국 풍수 풀이



"신설한 사원은 도선(道詵)이 산수의 순역(順逆)을 점쳐놓은 데 따라 세운 것이다. 그의 말에 '정해놓은 이외의 땅에 함부로 절을 세우면 지덕(지력)을 손상하고 왕업이 깊지 못하리라' 하였다. 후세의 국왕·공후(公侯)·후비(后妃)·조신들이 각기 원당(願堂)을 세운다면 큰 걱정이다. 신라 말에 사탑을 다투어 세워 지덕을 손상하여 나라가 망한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아니하랴."
 
고려 태조 왕건이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942년에 지었다는 <훈요십조(訓要十條)>의 두 번째 항목이다. 신라 말의 선승(禪僧)이자 풍수(風水)의 대가인 도선이 정한 곳 외에는 함부로 사원을 짓지 말라는 당부이다. 도선은 한국 풍수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 우리 선조들이 풍수를 얼마나 중하게 여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풍수는 어떤 의미인가. 미신과 실용, 신비와 경험,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모호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쩌다 TV에서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정체가 불분명한 무속인이나 도인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지리 우리 풍수의 인문학>은 우리 시대 산가(山家)로 불리는 최원석 경상대 교수가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해 우리 풍수의 복권(復權)을 도모하는 책이다. 한국인에게 풍수는 무엇이며, 정체와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각종 사료와 도판, 저자가 직접 찍은 각종 사진들을 곁들여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풀어낸다.
 
책은 한국풍수의 특징을 '생활풍수'로 규정한다. 현장에 가서 직접 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 같은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마을 고유의 풍수설화나 오래 가꿔온 풍수경관이 한국풍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는 "서민들이 썼던 풍수는 참 쉬웠다. 백성들에게 삶터는 산과 물이 적당히 둘러 있고 양지바르면 됐다. 마을 동구에 빈 구석이 있으면 산에서 나무를 옮겨다 심으면 됐다. 그렇게 살 만한 터전으로 가꾸었다. 그것이 우리 삶터 풍수의 참모습이다"고 설명한다.
 
주민들은 풍수를 활용해 슬기롭게 자연과 공생했고 비보(裨補)로써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조정했다. 비보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도와 보충한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인 시도 또는 노력을 뜻하는 풍수 용어. 풍수탑을 세우거나 음기(陰氣)를 막기 위해 인공적인 산을 조성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책은 "우리에게 풍수는 지역의 적절한 환경관리와 적합한 토지이용을 위한 문화전통이자 지식체계였다"고 강조한다.
 
한국풍수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꼽을 수 있다. 앞서 도선의 사례나 사찰을 지을 때 대부분 풍수적 입지경관을 고려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풍수는 8세기 중국에서 전해졌지만 이후 고려시대에 불교와 결합해 한국풍수 고유의 특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책은 "불교 전래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산천이 수려한 땅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며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이 땅은 과거 부처들과 인연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상이 퍼졌다"고 소개한다.
 
그렇다고 풍수가 사찰 건립에만 활용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지배층이 주로 풍수를 활용했다.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구사한 것이다. 왕궁이나 왕릉, 국가 차원에서 계획한 사찰 등을 만들 때는 풍수를 적극 활용해 일반 백성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했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풍수는 점점 민초들의 삶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마음 명당'이라는 명당관을 제시한다. 자연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며 "마음에 있는 이상적인 상태가 그 생김새대로 자연에서 구상화되는 것"을 뜻한다. 한국풍수를 '마음의 풍수' '사람의 풍수'로 부르는 까닭이다.
 
책은 지리산의 풍수적 특성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지리산은 큰 산맥과 통해 산과 물이 많다. 당연히 다른 곳보다 풍수형국, 즉 풍수적으로 자연을 다듬은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리산 인접권역인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하동·함양군 관내의 자연마을에서는 500여 개가 넘는 수많은 풍수형국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풍수지리가들이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유학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저자는 주자학적 지리인식이 눈에 띄는 장현광(1554~1637), 보길도에서 삶터풍수의 아름다움을 실증한 윤선도(1587~1671), 묘지풍수에 두각을 나타낸 권섭(1671~1759), '풍수종합사전'이라 불릴 만한 <택리지>를 쓴 이중환(1690~1752), 기학적 지리인식이 특징인 최한기(1803~77)를 '5걸(傑)'로 꼽았다. 책은 '풍토를 따름으로써 인(仁)을 돈독히 한다'는 주자(朱子)의 말을 인용해 "유교사상은 본래 자연풍토에 순응하고자 하는 환경사상"이라고 설명한다.
 
풍수의 미래는 어떨까? 저자는 꽤나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풍수 연구가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해석 수준이 높아지는 등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고 밝힌다. 풍수에 대한 현대적, 과학적 접근도 점증하고 무엇보다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서구에서도 풍수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의 해결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대안 사상' '심미적 경관미학' '지속가능한 주거지 입지선택과 건축 디자인 적용' '환경과 생태적 가치의 증진' 등의 견지에서 풍수의 의의와 비전이 서양에서도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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