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자란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을 만나는 공간. 구름과 안개를 품고 동해바다를 바라본다는 토함산 자락 숲속에 자리 잡은 동리목월문학관으로 들어가면, 한국 현대 문학사의 큰 나무로 우뚝 선 두 사람의 작품 세계와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다.

 

▲ 장편소설 '을화'로 노벨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김동리.

 

한국 현대문학사의 두 거목

■ 동리문학관
토속 감성에 영혼 담은 김동리
젊은 시절, 좌우 이념논쟁에 앞장 

■ 목월문학관
흙냄새 나는 자연 사랑한 박목월
깊은 산 옹달샘처럼, 맑은 목소리



■동리문학관

팔작지붕을 가진 콘크리트 건물로 지은 동리목월문학관 현관을 중심으로 왼쪽에 위치한 동리문학관. 입구로 들어가면 이어령 문학평론가의 글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동리문학은 나귀이다/ 모든 것이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나귀이다"
 
시류에 영합하는 반짝인기를 거부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목소리를 담으려 했던 작가라는 뜻일까. 전시실 벽면에는 작가가 살다간 발자취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나는 오랜 옛 서울의/ 한 이름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 하늘의 별을 볼 적부터…/ 아침에 피는 꽃과 황혼에 지는 동산의 가을 소리도…/ 언제나 그처럼 슬프고 황홀했다"
 

▲ 동리가 남긴 육필원고와 젊은 시절 사진.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왕국, 서라벌에서 태어나 사랑방 문턱 너머로 흘러나온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는 작가 김동리. 20대 초반엔 불교계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과 김법린, 최범술 등의 영향을 받고 출가를 결심했으나 "가부좌가 안 되는 바람에 뜻을 접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당시 최범술이 주지로 있던 사천 다솔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 대표작 '등신불'이라고 했다.
 
30대 중반에 좌파 논객들과 사상 논쟁을 벌이면서 민족문학의 대표 주자로 나서게 된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이후 40~50대를 거치면서 토속적인 감성의 빠져든 사연이 이어진다.
 
연보 옆에는 작가의 서재가 재현되어 있다. 도자기와 문갑 등 고풍스러운 집기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서재의 벽면에 한문으로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春風大雅雅能容物(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秋水文章不染塵(가을물처럼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젊은 시절, 이념 투쟁에 앞장섰을 만큼 피가 끓었던 작가 김동리도 세월 앞에서 둥글게 변해간 것일까.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다.
 
이같은 완숙미 덕분일까. 20대 초반에 발표했던 단편소설 '무녀도'를 50대 중반에 장편소설로 고쳐 쓴 '을화'가 1982년 노벨 문학상 후보작으로 최종심에 올랐다는 소개 글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 들판을 물들이는 과정을 지켜보듯 민족문학의 대표주자로 살다간 발자취를 살펴보는 산책길이었다.


■목월문학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목월문학관 입구 벽면에는 시인의 대표작 '나그네'의 첫 구절이 적혀 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 흙냄새가 난다"
 
흙에 뿌리를 둔 언어로 자연을 노래했던 시인 박목월을 소개하는 문학관.
 
"나는 늘 혼자였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목월은 고향 선배이자 문학적 동반자였던 소설가 김동리를 만나면서 고독감을 달래면서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회고록이 전시실 벽에 적혀있다.
 

▲ 섬세한 언어로 자연을 노래한 시인 박목월.

 
"북에 김소월이 있다면, 남에는 박목월이 있다. 김소월에게 툭툭 불거지는 맛이 있다면. 박목월에겐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맛이 있다."
 
1930~40년대를 풍미했던 토속시인 정지용이 격찬해 마지않았던 천재 시인, 박목월에게도 고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대목이 이채롭다.
 
그런 와중에 조지훈과 박두진을 만나서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고백이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탄생하는 배경으로 이어진다.
 
집필실을 재현한 공간에 놓여 있는 앉은뱅이책상과 교수로 재직했던 한양대 교원증, 월급봉투, 강의노트 등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시는 연필로 쓰고 산문은 만년필로 썼다는 소개 글이 인상적이다.
 

▲ 유리판에 새겨진 목월의 작품 세계.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ㅅ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도는/ 구름"
 
그토록 뼛속까지 자연을 그리워했던 시인의 정서를 푸른빛 유리판에 옮겨놓은 목월 문학관.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시인의 작품을 낭송하는 나래이터의 목소리가 감미롭게 다가온다. 깊은 산 속 옹달샘처럼 맑은 목소리로 전해오는 시인의 세계. 바로 이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 문학관을 찾는가 보다.

경주=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 경북 경주시 불국로 406-3.
남해고속도로(3.3km)를 타고 가다 중앙고속도로 지선(17.9km)으로 갈아탄 후 경부고속도로(55.4km)를 이용하면 된다.

*관람 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추석, 설날 당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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