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책 마을 ‘레뒤’의 주말 풍경.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 삼아 서점과 음식점, 숙박업소가 밀집해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각 분야별로 전문화된 서점이 마을의 주요 볼거리다.

 

1984년 부활절에 열린 책 축제
책 애호가 찾는 마을로 변화

자연·음악·만화 등 전문서적 취급
마을 내 경쟁 줄이고 특색 살려

지역 문화·관광자원 연계한 축제
방문객 부르는 콘텐츠 자리매김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울창한 숲,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초록빛인 벨기에 레뒤 마을은 조용한 산골이다. 지저귀는 새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는 작은 마을은 전세계 애서가들이 찾아오는 책 순례지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리브라몽 기차역까지 2시간, 마을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레뒤는 아름다운 숲이 매력적인 헌책방 마을이다.
 

■책마을 창시자의 열정
책마을로 유명해지기 전 레뒤는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생계수단은 농업과 임업이 주를 이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다. 발전 가능성이 없던 농촌마을 레뒤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브뤼셀에 살고 있던 언론인 출신 노엘 옹셀로 씨의 작은 꿈에서 시작했다. 옹셀로 씨는 레뒤 인근에 위치한 작은 성을 구입해 도서관을 지을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책 마을을 만들어 쇠락해가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레뒤는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사이에 있어 방문객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었다.  

▲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방문객들.

옹셀로 씨는 영국 웨일즈의 책마을 '헤이 온 와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레뒤를 책마을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는 브뤼셀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 여럿을 이끌고 레뒤로 입성했다. 이들은 마을에 방치되던 마굿간과 창고, 헛간에 책방을 차려 책을 촘촘히 집어넣기 시작했다. 마을에 남아돌던 빈 공간은 모두 책방으로 개조됐다. 옹셀로 씨는 지역 언론사와 접촉해 마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84년 부활절에는 책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전국의 서점에 편지 수백통을 일일이 부쳐 책 축제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이날 열린 첫 헌책 및 희귀도서 시장 이후로 레뒤는 전세계 책 애호가들이 찾는 책 마을이 됐다. 관광객이 급증하자 마을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숙박업소, 잡화점이 들어섰고 서서히 관광지로 변하기 시작했다. 

 
■서점마다 전문 서적 취급
현재 레뒤에는 총 15곳의 서점이 위치해있다. 한창 인기가 많았던 때에는 24개의 책방이 있었지만 많이 줄었다. 이곳의 책방들은 인문·과학 등 각 분야에 맞는 책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저마다 자연, 천문학, 역사, 여행, 음악, 고고학, 어린이를 위한 책과 만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마을 내 서점들의 경쟁을 줄이고 특색을 살리기 위한 옹셀로 씨의 아이디어다.
 
레뒤에는 책 마을지도가 제작돼 서점마다 비치돼 있다. 또 책과 관련된 장인들의 공방과 유기농 식료품점, 선물 가게, 전시장, 카페, 식당을 찾아볼 수 있다. 가게마다 고유번호가 있어 지도를 보고 찾아가기 편리하다.

▲ 카페와 서점, 숙박업소를 겸하고 있는 레뒤 카페.

1953년 미국 공상과학 작가 브래드베리가 쓴 과학 소설을 가게 이름으로 한 '화씨 451도'는 생위베르 가 14번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고서뿐만 아니라 현대 서적, 포켓 서적(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책), 추리소설, 문학, 과학, 인문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취급하고 있다.

레뒤 카페는 채식식당이자 카페와 숙소를 겸하고 있다. 음식과 책의 독특한 조화가 매력적인 곳이다. 음식을 주문하지 않아도 책을 구경할 수 있고 읽어볼 수 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쓰는 다언어 국가라 취급하는 책도 다양하다. '드 그리펠'은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영어 서적과 헌책, 손 때 묻은 옛 엽서를 판매한다.
 
책은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만화전문 서점, 요리전문 서점 등 다양한 매력의 서점들이 곳곳에 분포해 있어 지도를 펼쳐들고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활짝 열린 문을 지나 서점으로 들어가면 가게 주인들이 따뜻하게 인사한다. 길가 좌판에 무심하게 널브러진 헌책들은 단돈 1유로. 방문객들은 책을 쉽게 접하고 만질 수 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시원한 나무 그늘만 있다면 독서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로 변신한다. 간혹 서가 자리가 모자라 책이 뒤죽박죽 쌓여있는 서점도 만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원하는 책을 찾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지역 연계한 다양한 축제 개최
마을의 자랑거리인 레뒤 책 축제는 4월 부활절 주말에 열린다. 책 축제 이외에도 연중 다양한 행사가 수시로 이어진다. 2월에는 맥주가 있는 주말 행사가 열린다. 3월에는 웰린 카니발, 6월에는 헌책 시장, 7월 자전거 크로스컨트리 대회·불꽃축제, 8월 책 읽는 밤, 9월 버섯따기 체험, 아르덴 전설 축제·사슴과 함께 하는 산책, 11월 와인축제, 12월 크리스마스 축제 등 지역의 문화·관광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축제가 마련된다.
 

▲ 손 때 묻은 헌책들은 단 돈 1유로에 판매되고 있다(왼쪽). 레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고서들도 전시·판매 된다.

 
주말이 되면 레뒤의 가게들은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방문객 마리아 퍼넬 씨는 "서점과 더불어 맛있는 요리를 파는 식당들이 많아 한적한 연휴를 즐기기에 딱 좋다. 레뒤는 아름다운 자연과 책이 어우러진 멋진 마을"이라고 평가했다. 
 
마을 주민 샤를로트 윈링 씨는 "레뒤 마을이 책 마을로 성공한 이유는 무엇보다 울창한 숲과 자연 경관이 한몫했다. 레뒤에서만 접할 수 있는 헌책과 고서도 중요한 관광 콘텐츠다. 레뒤는 일 년 내내 마을 골목길과 숲속을 거닐기 좋은 날씨가 계속 된다"며 방긋 웃었다.

김해뉴스 /벨기에 레뒤=배미진 기자 bmj@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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