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이자 여신 연구가
수수께끼로 남은 여신 순례기
“현대사회 병폐 고치는 대안”



마고할미, 성모천황, 바리공주….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신(女神)이라는 점이다.
 
페미니스트이자 여신 연구가인 저자가 최근 펴낸 <여신을 찾아서>는 그리스의 크레타섬을 비롯해 제주도·지리산·경주 등 국내외 다양한 여신문화를 답사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여정을 여신을 찾아가는 '순례' 혹은 '순례길'이라고 표현한다.
 
흔히 여신이라고 말하면 현대적으로는 미모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거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수동적 여신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생명을 낳아서 품고 길러 온 생명력 자체가 여신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여성의 몸에서 탄생한다. 이 엄연한 사실에 여신의 뿌리가 있다." 그러면서 가부장제적 역사와 문화 아래 잊혔거나 억압된 여신문화를 새롭게 풀어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신이라는 말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선사시대는 물론 역사시대 초기까지도 인류는 거의 예외 없이 위대한 여신을 숭배하며 살았다. 최초의 사회 형태도 모계씨족사회였고, 그 삶의 중심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주기에 따라 이어졌던 제의들은 대개 여사제가 이끌었다.
 
저자는 여신을 찾아 저 멀리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시작된 여행길이 자연스레 제주를 지나고 서해를 헤엄쳐 지리산을 오른다. 크레타는 한때 유례없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여신문명이 꽃피웠던 섬이다. 저자는 "이 섬은 아주 늦은 시기까지 가부장제화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배와 억압이 없는 사회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첨성대가 여신상이자 신전이며 가야의 구지가가 여신신앙과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성적인 곡선을 가지고 있는 첨성대의 가운데 뚫린 입구는 성기와 자궁을 뜻하며, 구지가 역시 거북의 등 혹은 임신한 배를 상징하는 언덕에 올라 신성한 성혈(性穴)을 만들기 위해 흙을 파면서 부른 노래라는 것이다. 또 경주 포석정 돌도량을 여성의 성기를 표상한 것으로 읽어내기도 한다.
 
책에서는 현재까지도 여신신앙이 활발하게 살아 있는 제주도에서 신당을 방문하고, 하늘의 여신인 성모천왕이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도 하고, 서해에서 개양할미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바리공주나 자청비, 당금애기, 명월각시 같은 여신들이 등장하는 제주도의 신화들은 그리스 신화에 뒤지지 않는다.

저자는 "제주도의 여신들을 지켜 온 것은 본토보다 훨씬 강력했던 무속의 힘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전 국토를 누비다 보면, 어느덧 마고할미·바리공주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한국여신에 관한 이야기들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오늘날 여신이 낯선 수수께끼로 남은 것은 불교와 유교가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결과라고 말한다. 음사(淫祀)로 몰리고 미신으로 배척당하면서 우리의 여신들은 힘을 잃고 달빛 아래로 숨어야 했다는 것.
 
저자는 "그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 곳곳에 낮은 포복으로 살아 있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자신의 고단한 삶을 집 앞의 산 할미, 물 할미, 돌 할미들에 의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풍요로운 생명력과 신통한 치유력, 보호와 축복 없이 그들의 삶은 유지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원초적 생명력, 보살핌과 치유의 힘, 주체적이며 자신을 긍정하는 여성들, 그 안에 바로 여신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을 통해 신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기억하는 일, 이건 단순히 가부장제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길 희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본래 내재해 있던 '여신'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게 현대 사회의 억압적이고 대립적이며 위계적인 문화를 치유하고 바로잡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부산일보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