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권 시인

번번이 비상금을 털린다. 깊숙한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아무리 잘 숨겨도 아내는 쉽게 찾아내고야 만다. 매서운 탐색의 눈초리를 피해갈 수 없다. 숨기면 숨길수록 내 모든 것이 털리는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하다.

이제 나는 숨을 곳이 없는가? 아니 더 숨길 것이 없는가? 하기야 빤한 아파트 구조물에 구멍을 낼 수도, 문을 달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자기만 아는 비밀창고가 있었을 것이다. 오색구슬이나 딱지를 모아서 숨겨놓은 장소, 또는 어느 소녀에게 전달하지 못한 비밀편지 등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은 곳이 바로 나만의 보물창고인 것이다.

흔히 이야기 하는 보물창고는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은 구석지고 비좁기도 하겠지만 멀리 보이고 달빛이 새어드는 곳이다. 내가 그곳에 숨어들기라도 한다면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작은 몸을 지갑처럼 열어 보이던 곳이다. 친구들과 밀담을 나누던 곳, 수많은 비밀들이 생겨나고 꿈을 꾸던 보물창고인 것이다.

요즘은 다락방을 가진 집은 거의 없다. 밋밋하고 일관된 구조물인 아파트에서 다락방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다락방이 없어진다고 꿈마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만을 보듬어 주고 비밀을 지켜주는 다락방이 필요한 것이다. 바쁜 일상에 가족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공간에서 나를 숨겨야 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곳, 그 공간속으로 묻어야 할 비밀, 이런 것들을 모아 놓을 보물창고가 필요한 것이리라.

그 보물창고가 비밀창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상의 창고라 하면 비자금을 숨겨두는 곳이라 흔히들 이야기 한다. 소시민의 비자금은, 적은 돈이라도 혹시 요긴하게 쓰일 곳이 있을 것이라며 숨겨두는 곳인데, 이곳을 나만 아는 장소라며 자신만만하게 지내다가 느닷없이 털릴 때는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숨긴다는 것에는 찾아야 하는 공식이 존재한다. 결국 숨긴다는 것은 발견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비밀창고는 순수함을 담보한다.

보물창고의 용도가 많이 바뀌었다. 숨겨야 하는 것들이 많은 비밀창고로 바뀐 것이다. 그것도 지상이 아닌 지하로 깊숙이 숨어들고 있는 것이다. 요즘 뉴스에서 종종 터져 나오는 비리의 온상이 지하 비밀창고인 것이다. 지하비밀창고에는 회의실과 사무실을 갖추어 두고 있다고 한다. 무엇을 그리 숨길게 많은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비밀창고가 털리면 결정적인 감출 수 없는 증거들이 나온다. 수상한 흔적과 물증들이 박스로 묶여 나오는 비밀들, 그 속에는 누군가의 비밀이 가득 묶여 있는 것이다. 곧 서류뭉치들의 비밀이 밝혀지고 사람들도 줄줄이 묶여 나오는 것을 보면 지하비밀창고는 꿈을 꾸지 못하는 창고가 되는 것이다.
꿈이 사라진 보물창고는 새의 깃을 달지 못하고 달빛도 새어들지 않는다. 희망의 허리에 실을 묶어서 따라가던 달의 길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어디쯤에 내 마음의 보물창고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 눅눅하고 깜깜한 지하에서 올라와  손을 내밀면 구름의 발을 만질 수 있는 곳에다 달아볼까? 그곳에서 꿈을 만드는 신발을 신고 누구도 가보지 않는 그곳으로 날아가서 어둠을 씻는 달의 꿈을 꾼다.

나는 이제 나만의 보물창고인 언어의 집을 짓고 있다. 그 언어의 보물창고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기는 사랑의 편지를 숨겨두어야겠다. 훗날 누군가 내 보물창고에서 사랑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 숨기고 숨긴 가족에게로 향한 사랑의 감정을 통째로 들켜보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을 돌아오게 만드는 마음의 유적지인 다락방에서 내 기억을 다시 그려본다. 꿈의 분무기가 뿌려지던, 사라진 세상의 다락방에 초인종을 눌러본다. 노을이 걸릴 때 문이 열리면 노을만평을 불러들여야겠다. 눈이 내릴 때 문이 열리면 백설공주를 불러들여 아무도 모르는 사랑을 나누어야겠다. 꿈을 꾸는 다락방에서.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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