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생태와 미술사 접목
기원전 5000년 리비아 암각화부터
다빈치·마네·피카소 거장들까지



"한 마리의 고양이는 또 하나를 데려오고 싶게 만든다."
 
미국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이다. 그는 생전에 플로리다 인근 섬에 있는 집에서 무려 60마리의 고양이를 키울 만큼 이 동물을 끔찍이 사랑했다. 전담 고용인과 조수까지 둘 정도였다. '낚시광(狂)' 헤밍웨이가 잡은 생선은 모두 고양이들의 몫이었다. 그중에는 어느 선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발가락이 6개인 다지종(多指種) 고양이 '스노블'도 있었다. 반려동물로서 고양이가 갖는 마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식육목(食肉目) 고양이과의 포유류인 고양이. 개체 수로 따지면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려동물이다. 미국에서만 8700만 마리가 살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수억 마리에 달한다. 야생 고양이를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약 4000년 전 이집트에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문명사회에서 저장된 곡물에 들끓던 쥐 등 설치류에 이끌려 온 야생의 고양이가 해로운 동물을 방제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사람의 지원과 협력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면서였을 것이다. 사실, 고양이 길들이기는 이보다 훨씬 전인 1만 2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부터 시작됐다. 다만, 이집트인들과 달리 이 시기 사람들은 고양이 그림이라는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세계적인 동물 행동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인 데즈먼드 모리스가 쓴 이 책은 고양이의 생태와 미술사를 접목해 써 내려간 고양이 예술사이다. '신의 상징' '악마의 현신(現身)' '쥐 잡이' '움직이는 장난감' '집안의 1인자'까지 화폭에 표현돼온 변화를 통해 고양이의 사회적 위상과 처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본다. 마녀사냥의 광기가 작열했던 중세에는 무더기로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었던 고양이가 어떻게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섬겨야 한다는 정설을 깨뜨리러 세상에 왔다"(폴 그레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됐는지 그림을 통해 풀어낸다. 고양이가 인간의 사회에 편입된 이후 양자 간 교류사는 고양이를 그려온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모리스의 시선은 기원전 5000년 리비아의 싸우는 고양이 암각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고양잇과 동물이 일어서서 서로 치고받는 모습을 나타낸 이 암각화는 고양이를 '난폭한 공격성'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길들기 이전의 고양이가 등장하는 미술 작품은 이 그림을 포함해 몇 점이 전부다. 고양이가 독자적인 예술작품의 주제가 된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였다. 이 시기 그림을 보면 "집안에서 애정을 독차지하는 동료로, 종종 주인의 의자 밑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고 모리스는 설명한다. 책은 이후 시대 변천에 따라 그리스·로마를 거쳐 중세의 동물우화, 피카소의 초상, 솔 스타인버그의 <뉴요커>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의 벽화, 최근의 고양이 예술까지 종횡으로 넘나든다. 유럽 중심의 단조로운 구성을 피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부족의 문화와 아시아의 수묵화,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까지 망라한다. 책에 수록된 137개의 고양이 명화들은 모리스의 동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돼 고양이의 역사와 그를 그려온 인간의 예술사를 톺아본다.
 
책은 거장들의 고양이 그림에 담긴 의미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가장 작은 고양이는 하나의 걸작이다"고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의 1470년대 스케치 '성모와 고양이'를 보면 성모가 안고 있는 아이가 제 품의 고양이가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을 조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가 아내를 그린 초상에 나오는 무릎 위 고양이는 마치 그 치마의 주름에 녹아든 듯한 질감을 가지며,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독일의 프란츠 마르크의 그림에서 고양이는 거의 도형으로 환원돼간다. 평생 고양이를 길렀지만 정작 화폭에는 길고양이의 흉포함을 담았던 파블로 피카소, 평생 고양이들을 화실 동료로 삼았던 파울 클레의 스토리도 더해진다. 국내 작가로는 유별나게 고양이를 많이 그려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변상벽에 관한 설명이 그의 1750년경 작품인 '묘작도(猫雀圖)'와 함께 등장한다.
 
모리스는 책에서 특별히 소박파(素朴派, Native Art) 화가들의 그림에 애정을 보인다. 두 장(章)을 할애해 앙리 루소, 모리스 허시필드, 루이스 웨인 등 '소박 실재파(Native Realist)'와 스콧 다이널, 샐리 웰치언, 미로코 마치코 등 '소박 원시파(Native Primitive)'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들의 그림 속 고양이는 일상의 풍경 속 인간의 주인처럼 묘사되는가 하면 복슬복슬 또는 매끈매끈한 털을 인상적으로 과시하기도 하고, 유려한 몸의 곡선을 뽐내기도 한다. 소박파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고양이를 활용한 풍자화와 공공벽화 등에 나타나는 최신 고양이 예술에까지 이어진다.
 
모리스는 동물 행동학자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책에 틈틈이 고양이의 생태를 소개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림에 묘사된 고양이가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발톱을 내밀지 않은 걸 보면 사실은 우호적인 상황이다"라거나 소녀에게 고양이가 뺨을 비비는 것은 '냄새 표시'를 찍어서 영역을 표시할 정도로 소녀와 애착 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증거라는 설명 등이 눈길을 끈다. 박식하되 재는 체하지 않는 어조로 고양이와 인간에 관한 예술사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부산일보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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