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프랑스 베슈헬의 전경. 이곳에는 14곳의 헌책 서점과 아틀리에, 식당, 호텔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단체, 주민 협력해 마을 조성
지자체 협조 문화·관광 발전 견인

14곳 서점 모두 헌책 수집·판매
300~400년 된 고서도 볼 수 있어

매주 책 상인 찾아와 시장 열려
지난 4월 책 축제에 3천 명 방문 




유럽의 대표적인 책 마을을 꼽아보자면 영국의 '헤이 온 와이', 벨기에의 '레뒤', 프랑스의 '베슈헬'이 있다. '헤이 온 와이'의 흥행 요인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획력에 있었다. 레뒤는 지역의 문화·관광자원을 활용한 축제를 수시로 개최해 마을을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떨까? 베슈헬은 프랑스 최초의 책 마을이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만들어진 책 마을이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렌느 역까지 1시간 50분, 또 렌느 역에서 베슈헬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접근성이 좋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매주 책 시장이 열리며 전국 각지에서 책을 찾는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작은 마을이 프랑스 대표 책마을로 성장하기까지 사회단체의 노력과 주민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김해가 '대한민국 책의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사회단체가 만든 전략적 책 도시
베슈헬은 1989년 사회단체 '사븐 두아르'가 만든 전략적 책 도시다. 사븐 두아르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어떻게 잘 살고 일할 것인지 연구하는 단체다. 또 문화적 혜택이 큰 도시보다 삶의 질이 높은 시골 마을을 찾아 도시를 재생하는 문화회사의 성격을 가지기도 했다.
 
1980년대의 베슈헬은 사람이 없는 도시였다. 전체 건물의 3분의 2가 매매 상태였고 사람이 살만한 공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 경관이 예쁜 텅 빈 도시'였던 것이다.  

▲ 옛 프랑스의 책 상인들은 책을 지고 다니며 팔았다.

사븐 두아르가 베슈헬을 책의 도시로 키워보자고 설득했을 때 주민들은 믿지 않았다. 책이라는 것은 똑똑한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고 마을을 살려내는 게 힘들 줄 알았다. 사븐 두아르는 책 상인들을 설득해 베슈헬에서 장사를 하도록 도왔다. 처음엔 6명의 책 상인들이 들어왔고 그 수는 점차 늘어났다. 
 
책 마을을 유치하고 나서부터 주민들에게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베슈헬이 책의 마을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근 브루타뉴의 예술가들도 점차 모여들었다. 문화관광 산업이 발전하고 도시를 재생하는 사업이 진행됐다. 쇠락하던 마을에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에는 마을 입구에 '책의 집'이 생겼다. 이 공간은 관광안내소의 역할과 동시에 독서모임, 아틀리에, 강연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또 책과 관련된 기술과 직업, 역사를 교육하기도 한다. 책의 집과 책 축제가 생기면서 관할 지자체는 책 마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사븐 두아르의 자원 봉사자들과 서점 주인 간의 일의 균형도 맞춰졌다.
 
현재는 사븐 두아르의 역할을 사회단체 '꼬미떼 드 꽁세흐따시옹'이 위임받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예술가의 터전
버스에서 내려 베슈헬에 도착한 순간 오래된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분위기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재 주민 수는 700여 명. 아이들이 있는 젊은 부부나 경제활동 후 고향으로 돌아온 퇴직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도시에는 14곳의 헌책 서점과 7곳의 아틀리에, 식당과 호텔 1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유리공방과 캘리그래피 작업실, 제본 공방, 도자기 공방, 보석 등을 전시한 공간까지 다채로운 성격의 가게들이 많다.
 
이곳의 서점들은 모두 헌책을 판다. 새 책은 다른 도시에서도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차별화를 둔 것이다. 사실 선택권도 없었다. 무조건 헌책이라야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서점 주인은 "방문객들은 300~400년된 책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책이 버텨낸 시간도 역사의 한 부분인데 다들 그것을 잊고 산다. 베슈헬은 책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라며 활짝 웃었다.
 

▲ 베슈헬 주민들의 독서모임, 강연 장소, 관광안내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책의 집’ 내부.


책을 제본하는 공방 '리브르 엉 센느'를 운영 중인 스테파니 토마 씨는 "베슈헬은 마치 작은 요새처럼 느껴졌다. 이방인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곳이라 이곳에 자리잡게 됐다. 공방에서는 17~18세기 망가진 고서를 수리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매년 4월이 되면 책 축제가 열리며 8월에는 '책 읽는 밤' 행사가 열린다. 3~12월에는 책상인 15명이 매주 일요일에 책 시장을 열기도 한다.
 
'책의 집' 담당자 마일라 씨는 "30번째 책 축제는 지난 4월에 '영화와 책'을 주제로 진행됐다. 배우와 영화감독, 작가, 교수, 역사가들이 초청돼 축제를 풍성하게 꾸몄다"며 "시네콘서트와 뮤지컬 책 읽기, 연극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3일 동안 진행된 축제에 3000명이 다녀갔다. 유명한 배우가 와서 더 인기가 많았다"고 방긋 웃었다.
 



“책 마을 발전 위해 끊임없이 고민… 주민 간 연대·포용 중요”
 

책 마을 선구자 프레테세이 씨
상인 간 소통하며 축제 기획도

 

▲ 베슈헬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이본 프레테세이 씨.

"베슈헬의 성공은 서점 상인과 주민들이 늘 소통하며 연대해왔기에 가능했습니다."

책 마을 선구자 중 한 명인 이본 프레테세이 씨는 베슈헬의 성공요인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9년 책 마을이 만들어진 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그리지엔 서점을 열었다.

프레테세이 씨는 마을을 살리기 위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중이다. 주민들과 함께 영국와 벨기에의 책 마을 선진지도 견학했다. 그는 "어떻게 같이 일하고 마을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생각한다.  그저 장사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한 데 모아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다. 마을이 정체됐다고 느꼈을 땐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축제도 베슈헬 안에서만 폐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영역을 확장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은 책을 콘텐츠 삼아 어떻게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할 지 늘 연구한다. 이들은 아직까지 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부 주민들을 설득하기도 한다.

프레테세이 씨는 "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독서문화보다 낮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책 문화와 생활 속 기술을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면 목공기술자들의 기술을 보여주려 공간을 개방해 이들이 가지는 소외감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마을을 책 마을로 만들었다고 해서 모두의 책 마을이 될 순 없다. 우리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주민들을 포용하고 함께 관계를 맺어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든 서점들이 오래된 헌책을 고집하는 만큼 청소년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헌책은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헌책방이긴 하지만 학생 권장도서를 마련해놓고 청소년 책은 새 책으로 준비한다"며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중이다. 글쓰기 수업, 책 만들기 과정을 개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프레테세이 씨에게 책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인간적인 기계가 넘쳐나는 사회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사회와 한 발짝 떨어져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프레테세이 씨는 "방문객들은 책을 만지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책에는 많은 메시지가 있다. 책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제본자와 활자를 인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책의 냄새를 맡거나 만지고, 듣고, 읽는 행동이 모든 감각과 연결된 것이다. 책은 오감을 살아있게 만들어준다"며 활짝 미소 지었다.

김해뉴스 /프랑스 베슈헬=배미진 기자 bmj@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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