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영화·미학 넘나들어

철학과 영화, 미학을 넘나들며 사유의 폭을 넓혀온 이왕주 부산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제자들과 함께 정년을 기념한 부산대 영화연구소 학술총서 시리즈 제8권 <영화와 담화>를 펴냈다.

'스크린 바깥', '이미지 존재', '실존의 무늬', '행위의 빛깔' 등 4개 부분으로 나뉜 책은 실례를 통해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됐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마더!'(2017)를 보자. 성경을 토대로 한 분석은 기본. 혼돈(카오스), 질서(코스모스), 혼돈 속 질서(카오스모스)의 개념은 물론 자크 데리다의 '무조건적 환대(방문의 환대)' 등을 거쳐 수평적 관계를 통해 신의 존재를 모색하고자 한 영화로 풀이된다.

'한국적인 문제의식과 정치 상황을 반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는 어떠한가. '현재의 위험과 미래의 불안을 안고 달리는 위험사회의 기차는 양극화된 당대 계급사회에 대한 은유와 위험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과학적·미학적 상상력으로 담은 의미 있는 SF'이자 '과학기술적·도구적 이성의 실패와 디스토피아적 양상을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열린 텍스트지만 해방과 미래를 향한 윤리적·정치적 비전을 고뇌하게 하는 성찰적 영화'로 해석된다.
 

 
타자화된 동물이 처한 극한 환경을 조명하며 '동물권(animal rights)'에 대한 거대 담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각종 동물실험과 동물원, 수족관, 도시 공간, 가정, 미디어, 광고,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 및 영화, 소설, 교과서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타자화된 동물들의 실태를 통해 '동물에 대한 차별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윤리적이지 않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책은 포토저널리즘의 문을 열며 '진실이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며 최대의 선전선동'이라고 한 로버트 카파를 비롯해 '살아서 신화였고 죽어서 전설이 된' 사진작가 카르티에 브레송의 찰나의 미학도 다루고 있다.

책 말미에는 이 교수의 제자인 최성희 박사가 이 교수를 조명한 '철학하기의 영화 같은 삶'이 수록돼 이 교수가 걸어온 길을 엿볼 수 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철학이 우리 곁에 늘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이 교수의 글은 세상을 향한 일침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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