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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詩人 악양 햇볕에 반하다① 박남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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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0.12.21 15:04
  • 호수 4
  • 14면
  • 박현주 북칼럼니스트(report@gimhaenews.co.kr)

   
▲ 지리산 아래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에 내려앉은 박남준 시인이 거실에서 방문객을 만나 지저귀고 있다.
혼자 눈을 맞고 있는 집이 있다
그 집 굴뚝 위 따뜻하게 피어오르던
흰 저녁 연기 같은
우우 눈발을 부르며 산자락에 소복으로
엎드려 우는 <박남준 '외딴집' 전문>
 
섬진강을 차창 왼편으로 흘려보내면서 지리산을 향해 달린다. 갈대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겨울강, 원래의 뼈대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드디어 제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겨울산을 바라보며 박남준 시인을 찾아가는 길이다.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시 악양면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악양까지 가는 동안 호암마을, 흑룡마을, 흑점마을, 하신대마을 그리고 또 몇 개의 마을 입구에 버
   
▲ 고소산성아래 도로에서 바라보는 악양들판과 섬진강
스가 정차했다. 안내방송이 없는 버스를 타고 가느라 연신 신경을 쓰는 이는 나밖에 없다. "내리요~"하는 할아버지의 음성, 농사 이야기를 주고받는 할머니들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나만 빼고 버스 안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다정한 풍경들, 사람 사는 향기가 느껴지는 작은 소란들 속에서 버스를 타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도시를 떠나 산중에 살면 돈이 들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한 시인은 1991년부터 악양으로 오기 전까지 전북 전주 모악산 자락의 외딴집 '모악산방'에서 살았다.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나, 시인은 모악산과 지리산 아래에서 살고 있다. "바다는 어딘지 불편해요. 하지만 산은 편해요. 산 체 질인가 봅니다"라고 말하던 시인이 정든 모악산을 떠나 악양으로 이사를 오는 이야기를 쓴 시 '이사, 악양'의 첫 구절은 이렇다. '결국 남쪽 악양 방면으로 길을 꺾었다 / 하루 종일 해가 들었다'.
 
악양(岳陽)이라는 지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악양은 지리산이라는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면서도 햇빛이 많은 땅이다. 악양으로 이사를 와서 아침에 묵은 빨래를 해서 널었더니 점심 무렵에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다시 또 다른 빨래를 해서 널었더니 해가 지기 전에 또 말랐다. 그래서 미뤄 둔 빨래를 모두 해치웠단다.
 
   
▲ 박 시인의 집. 곶감과 문패
악양면사무소에 내려 다시 동매리로 접어들어 마을 길 끝, 산 자락이 시작되는 곳까지 걸어 올라가면 시인의 집이 있다. 시인이 직접 깎고 매만져 만든 곶감이 주렁주렁 보석이 되어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그 집의 이름은 '심원재(心遠齋)'이다. 집 앞 마당에 햇살이 가득 내려와 있었다. 겨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등에 내려오는 햇살이 포근하고 따뜻해 두터운 외투를 금방 벗어 버려야 했다.
 
몇 년을 동매리에서 보내는 동안 어느 계절이 가장 좋았는지 물어보았다. 겨울이 좋다는 답이 대번에 돌아온다. "여름에는 몸이 늘어지고 정신이 명징하지 못한데, 겨울은 그렇지 않지요. 그리고 겨울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집에서는 몸을 움직여 나무를 하고 불을 때야 합니다. 그렇게 몸을 쓰는 동안 정신이 명징해지지요. 겨울이 긴 나라에 철학가와 문인들이 많은 까닭이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인은 이 겨울을 나기 위해 도끼와 전기톱과 정으로 직접 나무를 패고 다듬어 장작을 마련했다. 장작을 가득 채워두었으니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동네 끝, 산 아래 작은 집에서 시인이 홀로 지내는 시간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박남준 시인의 시는 그동안 슬픔의 정서를 담아 왔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세상을 접근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하면, 한 세상을 살아 내느라 힘들고 지쳐 쓰러진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시가 있고, 같이 쓰러져 주저앉아 나 역시 힘들다며 손 내밀어 감싸 안는 동지적 위안을 주는 시가 있다. 시인은 후자에 가까운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악양으로 이사를 와 햇빛이 아낌없이 쏟아져 내리는 집에 사는 동안 점점 명랑해지고 행복해져서 시를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거짓으로 시를 쓸 수는 없는 일이라 이제는 '그 분'이 시로 더 이상 나에게 오지 않는구나 싶었으나, 어느 날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을 들었다. 이른 봄 아침 마당에 나와 들은 자연의 말을 시인은 시로 썼다.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 아장 아장 걸어 나온 / 아침 아기 이파리 / 우표도 붙이지 않고 / 나무들이 띄운 / 연둣빛 봄 편지' <'봄 편지' 전문>
 
   
▲ 꽃잎을 넣어 만든 방문
그렇게 악양에 정이 든 시인은 악양에 뼈를 묻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악양에서 쓴 시편들을 묶어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를 발표했다. 시인이 악양에 와서 벌인 일들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이 '악양동네밴드'이다. 지리산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이들 중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밴드를 결성하고 2008년 첫 공연을 열었다. 작은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만들었다. 지역민들과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이 공연은 매년 계속된다.

공연 장소는 폐교(매계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하동학생야영수련원이다. 동네밴드 결성의 공을 인정받은 시인은 밴드 구성에서 하모니카를 맡았고, 자신의 시를 노래로 만들기도 한다. 조만간 시인의 이력 옆에 작곡가란 이름이 붙을지도 모르겠다.
 
동네밴드가 활성화된 뒤에 생긴 또 하나의 결실이 지리산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지리산 학교(ttp://cafe.daum.net/jirisanartschool/)이다. 기타, 도자기, 목공예, 염색, 퀼트, 시 등 예술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지역민과 지리산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만든 열린 학교로 인기가 높다. 정규과정이 1년으로 졸업을 할 때는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도 연다.

지역민들의 관심을 더 많이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 '악양골 작은 도서관 책보따리(http://cafe.daum.net/chackBo/)를 취간림 앞에 마련했다. 회원들이 도서관지
   
▲ 어린이도서관 책보따리 내부
킴이로 활동하는 작고 아름다운 도서관에서는 책도 빌려주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어린이책출판사에서 책도 기증받았지만,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책보따리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이제는 동네극단을 한번 만들어볼 욕심을 내고 있어요." 시인과 함께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문화예술인들은 내친 김에 연극을 해 볼 생각이란다. 전문연극인들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모아 극단을 만든다니 얼마나 재미있을지 듣기만 해도 흥미롭고 조금은 부러웠다. 동네밴드 공연과 함께 연극까지 보게 될 모양이다. 그날은 동네 전체가 또 얼마나 흥성거릴까. 문학과 음악과 예술이 지역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고 호흡할 수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답게 빛이 나는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시인에게서 악양들판과 섬진강을 함께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소개받았다.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을 지나 산길을 달리면 고소산성(사적 제151호)에 이른다. 돌로 쌓은 이 산성의 성벽 위에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산성 아래 도로에서도 악양 들녘 뿐만 아니라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의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물길도 보였다. 참으로 큰 산이고, 넓은 들이고, 아름다운 강이다.
 
박남준 시인은 그 모든 것의 혜택을 받고 있는 악양 동매리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여덟시 전에는 일어납니다. 내가 참견할 일이 많거든요. 햇살은 마당 구석구석에 잘 내려왔는지, 꽃은 예쁘게 깨어났는지, 구름은 제 갈 길로 잘 가고 있는지, 내가 챙겨 봐야 할 일이 많답니다." 시를 쓰는 것 외에도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시인이 있어 독자들도 행복하다.


물총새 목 축이고 흥겹게 뛰어놀던 취간림(翠澗林)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우수상도 받아

악양면사무소 아래 악양천이 흐르는 정동리 소재지에 위치한 '취간림(翠澗林)'은 악양천의 중간지점에 수구막 역할을 위해 나무를 심으면서 숲이 됐다. 취간정이 건립된 후 숲의 이름도 '취간림'이라 부르게 됐는데 취간정은 없어지고 숲만 남았다.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의 우수상을 수상한 취간림 한 가운데는 취간정 대신 한 재일교포가 세운 팔경루가 옛 정취를 대신하고 있다. 취간림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3천여 명의 항일독립투사의 넋을 기리고 활약상을 전하는 기념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역사 앞에 고발했던 악양면 출신의 고(故) 정서운 할머니를 추모하는 평화의 탑, 지리산 일대에서 한국전쟁 당시 숨진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도 세워져 있다. 맑고 깨끗한 악양천과 취간림은 지역주민의 휴식공간이고 체육시설이며 악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들러봐야 할 아름다운 곳이다.


박남준 시인은 ─────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횡성이고 어머니는 이북이다. 1984년 <시인> 제2집에
'할매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별의 안부를 묻는다>, <나비가 날아간 자리>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박남준 산방일기> 등을 발표했다.
시인은 전북 전주에서는 '지역문화운동의 대부'로 통한다.
서울의 직장을 1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 두고 모악산 자락에서 지내다가 2003년 9월 지리산 아래로 옮겨 현재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서 살고 있다.

 


   
 





박현주_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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